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내용
패강진전의 군관조직은 최고책임자로 두상대감(頭上大監)을 두고 그 밑에 대곡성두상(大谷城頭上)을 두었으며, 다시 그 아래에 대감(大監) · 두상제감(頭上弟監) · 제감(弟監) · 보감(步監) · 소감(少監)을 두었다.
두상대감은 1인으로 782년(선덕왕 3)에 설치하였고, 대곡성두상은 급찬(級飡)으로부터 사중아찬(四重阿飡)까지로 삼았다. 대감은 7인으로 관등은 태수(太守)와 같은 까닭에 중아찬(重阿飡)에서부터 사지(舍知)까지로 삼았다.
두상제감은 1인으로 사지로부터 대내마(大奈麻)까지로 삼았으며, 제감은 1인으로 당(幢)으로부터 내마에 이르기까지이다. 보감은 1인이며 그 관등은 현령(縣令)과 같은 까닭에 사찬(沙飡)으로부터 선저지(先沮知)까지로 삼았다.
소감은 6인으로 관등은 선저지로부터 대사(大舍)에 이르기까지로 삼았다. 패강진은 본래 평산에 본영을 두고 있는 군단이지만, 대상 지역은 예성강 이북의 광범위한 일선지방이었다.
이 지역은 한반도의 여러 지역에 비하여 후진 지역이지만, 뒷날 고려왕조를 성립한 왕건(王建)의 세력이 이곳 군진의 무력을 배경으로 사회적인 진출을 꾀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한국금석유문(韓國金石遺文)』(황수영, 일지사, 1978)
- 「통일신라 북방개척과 패강진」(조이옥, 『백산학보』46, 1996)
- 「신라하대(新羅下代)의 패강진(浿江鎭)」(이기동, 『한국학보(韓國學報)』4,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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