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전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육주비전(六注比廛)의 하나로 포(布)를 취급하던 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육주비전(六注比廛)의 하나로 포(布)를 취급하던 전.
내용

조선시대 시전(市廛)은 판매 이익의 정도에 따라 응분의 국역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국역을 많이 부담하는 전을 유분각전(有分各廛)이라 하고 그 반대를 무분각전(無分各廛)이라 하였다.

유분각전은 모두 30전(廛)이 넘었는데, 국역의 세액은 최고 10분(分)에서 최하 1분까지 있었다. 이러한 유분각전 중에서 국역을 가장 많이 부담하는 전을 골라 육주비전(또는 六矣廛·八廛)이라고 한 것이다.

육의전 중에서 포전의 국세는 5분에 해당하는 큰 시전으로 주요 취급물종은 포, 즉 삼베였다. 포는 대마(大麻)로 만든 베로서 조선 중기까지는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료(衣料)였다. 오늘날에 포는 직물(織物)의 총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원래 비단을 가리키는 동물 섬유는 주단(紬緞)이고 면직물은 면주(綿紬, 白木 또는 무명)라 하였다. 그리고 모시는 저포(苧布)라 하여 삼베인 포와는 달리 구분되어 있었다.

조선 중기 이전에는 면화의 생산이 보급되지 않아 지배 계급이나 상류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의 의생활은 대부분 포의 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 거래 물량도 많았다.

다만, 경시(京市)에서는 지배 계층이 값비싼 견직물과 면직물을 많이 수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물종을 취급하는 시전인 선전(縇廛)·면포전·저포전 등은 그 규모가 크고 국역 부담도 많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포전은 한 때 저포전에 합시(合市)되어 육주비전에 속한 일도 있었다. 포전은 대부분 종루(鐘樓)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한성부내 서민들의 의료 공급을 주로 맡고 있었다.

대마 생산과 포, 즉 삼베의 생산은 전국 각지에 널리 산재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경상도의 안동포, 함경도의 육진장포(六鎭長布) 및 경기도의 강화반포(江華斑布)가 유명하였다. 또, 맹산(孟山)과 영동 지방은 삼과 베의 주산지로 알려져 그 곳에서의 산물이 경시로 올라와 포전의 주요한 취급물종이 되었다. →육주비전

참고문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만기요람(萬機要覽)』
『청구시장(靑丘示掌)』
『육전조례(六典條例)』
「서울 육의전연구(六矣廛硏究)-이조(李朝) 도시상업(都市商業)의 고찰(考察)-」(유교성, 『역사학보』8, 1955)
「李朝貢納制 の硏究」(田川孝三, 『東洋文庫論叢』, 47, 196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