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시전(市廛)은 판매 이익의 정도에 따라 응분의 국역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국역을 많이 부담하는 전을 유분각전(有分各廛)이라 하고 그 반대를 무분각전(無分各廛)이라 하였다.
유분각전은 모두 30전(廛)이 넘었는데, 국역의 세액은 최고 10분(分)에서 최하 1분까지 있었다. 이러한 유분각전 중에서 국역을 가장 많이 부담하는 전을 골라 육주비전(또는 六矣廛·八廛)이라고 한 것이다.
육의전 중에서 포전의 국세는 5분에 해당하는 큰 시전으로 주요 취급물종은 포, 즉 삼베였다. 포는 대마(大麻)로 만든 베로서 조선 중기까지는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료(衣料)였다. 오늘날에 포는 직물(織物)의 총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원래 비단을 가리키는 동물 섬유는 주단(紬緞)이고 면직물은 면주(綿紬, 白木 또는 무명)라 하였다. 그리고 모시는 저포(苧布)라 하여 삼베인 포와는 달리 구분되어 있었다.
조선 중기 이전에는 면화의 생산이 보급되지 않아 지배 계급이나 상류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의 의생활은 대부분 포의 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 거래 물량도 많았다.
다만, 경시(京市)에서는 지배 계층이 값비싼 견직물과 면직물을 많이 수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물종을 취급하는 시전인 선전(縇廛)·면포전·저포전 등은 그 규모가 크고 국역 부담도 많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포전은 한 때 저포전에 합시(合市)되어 육주비전에 속한 일도 있었다. 포전은 대부분 종루(鐘樓)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한성부내 서민들의 의료 공급을 주로 맡고 있었다.
대마 생산과 포, 즉 삼베의 생산은 전국 각지에 널리 산재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경상도의 안동포, 함경도의 육진장포(六鎭長布) 및 경기도의 강화반포(江華斑布)가 유명하였다. 또, 맹산(孟山)과 영동 지방은 삼과 베의 주산지로 알려져 그 곳에서의 산물이 경시로 올라와 포전의 주요한 취급물종이 되었다. →육주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