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

목차
고대사
제도
신라시대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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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시대의 관직.
내용

문필과 학술을 맡은 관직이다. 처음 국가의 외교문서를 담당한 관청으로 상문사(詳文司)를 두어 여기에 상문사(詳文師)를 소속시켰다.

714년(성덕왕 13) 이를 통문박사(通文博士)로 고쳤으며, 다시 경덕왕 때 당나라의 한림원(翰林院, 일명 學士院)을 모방하여 한림대(翰林臺)를 설치하고 여기에 한림랑(翰林郎)·대조(待詔)·서생(書生) 등을 배치하였다.

신라 말기에 한림대를 서서원(瑞書院)으로 고치면서 한림랑을 학사로 개칭하였으며, 숭문관(崇文館, 일명 崇文臺)에도 학사를 두었다. 학사는 대개 겸직이었으며, 당대의 문병(文柄)을 장악하는 최고의 명예직이기도 하였다.

신라 말기의 큰 문장가들인 최치원(崔致遠)·박인범(朴仁範)·최언위(崔彦撝)는 모두 학사 출신이었다. 후고구려의 문필·학술 기관이었던 원봉성(元鳳省)에도 학사를 두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나말려초(羅末麗初) 근시기구(近侍機構)와 문한기구(文翰機構)의 확장(擴張)」(이기동『역사학보(歷史學報)』77, 1978)
『신라(新羅) 골품제사회(骨品制社會)와 화랑도(花郎徒)』(이기동, 한국연구원, 1980)
「新羅聖德王代の政治と外交」(濱田耕策, 『朝鮮歷史論集』上, 1979)
집필자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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