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과 학술을 맡은 관직이다. 처음 국가의 외교문서를 담당한 관청으로 상문사(詳文司)를 두어 여기에 상문사(詳文師)를 소속시켰다.
714년(성덕왕 13) 이를 통문박사(通文博士)로 고쳤으며, 다시 경덕왕 때 당나라의 한림원(翰林院, 일명 學士院)을 모방하여 한림대(翰林臺)를 설치하고 여기에 한림랑(翰林郎)·대조(待詔)·서생(書生) 등을 배치하였다.
신라 말기에 한림대를 서서원(瑞書院)으로 고치면서 한림랑을 학사로 개칭하였으며, 숭문관(崇文館, 일명 崇文臺)에도 학사를 두었다. 학사는 대개 겸직이었으며, 당대의 문병(文柄)을 장악하는 최고의 명예직이기도 하였다.
신라 말기의 큰 문장가들인 최치원(崔致遠)·박인범(朴仁範)·최언위(崔彦撝)는 모두 학사 출신이었다. 후고구려의 문필·학술 기관이었던 원봉성(元鳳省)에도 학사를 두었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