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체. A5판. 326쪽. 1920년 상해(上海)유신사(維新社)에서 간행하였다.
박은식은 한국이 반드시 광복하는 날이 올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1915년 『한국통사(韓國痛史)』를 저술한 뒤, 민족독립을 기다려 광복사(光復史)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쓰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1919년 거족적으로 일어난 3·1운동에 자극을 받아 광복사가 아닌 독립운동사를 쓰게 된 것이다. 3·1운동 직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파리강화회의에 이어 개최되는 국제연맹회의에 한민족의 독립 지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이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그 해 7월 임시사료편찬회를 구성하였다.
이때 박은식은 한일관계사료 편찬에 종사하였고, 그 해 9월 『한일관계사료집』 4책이 간행되었다. 그런데 박은식이 독립운동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이대부터였다. 그러므로 사료집 편찬을 위해 수집된 방대한 자료를 활용할 수가 있었다. 특히 사료집 제2∼4책에 수록된 자료를 토대로 하여 1920년에 완성한 것이다.
그렇지만 박은식이 책을 저술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초가 되었던 것은,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체험과 견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1898년 이래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펼쳤으며, 그리고 국권을 상실한 뒤에는 1911년 서간도를 거쳐 상해로 망명하여, 이 지역 민족독립운동의 중심 단체였던 동제사(同濟社)에서 활동하였고, 임시정부 수립후에는 기관지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하였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은 1884년 갑신정변부터 3·1운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20년까지의 사실을 상편(25장)·하편(31장)·부록(세계여론) 등의 3편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비록, 순한문체로 서술되었지만, 『한국통사』에서처럼 전통적 역사 서술 방식인 편년체나 기전체(정사체)에서 탈피하여, 근대 역사학의 서술 방식인 주제별·사건별·사실별 체재를 채택하고 있다.
책의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상편에서는 한민족의 약사와 한말의 역사적 사건, 일제의 침략 정책과 이에 대한 민족의 항거 그리고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한 일제의 학정 등을 다루고 있다.
하편에서는 한민족과 일본민족을 비교하여 양민족은 결코 결합될 수 없는 빙탄(氷炭)의 관계임을 밝혔다. 그리고 3·1운동 직전 국내외 한국인의 활동과 독립운동, 3·1운동의 발발과 진행 과정, 지방 및 해외에서의 3·1운동의 집회 횟수·피검거 인수·사망자 수·부상자 수·투옥자 수의 통계표 등을 서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만행 사례, 3·1운동 이후의 독립운동 상황, 즉 임시정부의 수립, 민족독립을 위한 각계의 대외 활동, 독립군의 투쟁과 청산리대첩, 청년과 부인들의 활동과 열사들의 투쟁, 서간도·북간도 지역에서의 일제의 만행과 그 참상 조사표 등을 다루고 있다.
하편은 책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3·1운동의 태동과 발발, 전개과정, 이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만행 실태, 그리고 3·1운동 이후의 독립운동상황 등 3·1운동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3·1운동에 대한 지역별·전국적인 각종 통계표(7장)와 서간도·북간도 지역에서의 일제의 만행과 참상 조사표(30장) 등은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부록에서는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세계여론을 수록하였다. 미국인 헐버트(Hulbert, H.B.)가 쓴 일제의 한국침략과 이에 대한 한민족의 저항에 관한 글을 비롯하여, 중국(상해)·영국 등 각국 신문에서 한민족 독립운동 상황을 소개한 글들을 뽑아 싣고 있다.
박은식은 망명한 이래 민족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약하는 한편, 한국사 탐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서간도에서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개소문전(蓋蘇文傳)』·『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 등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상해로 옮긴 뒤에 저술한 『한국통사』와 이 책은 한국 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하였을 뿐 아니라, 한국사에 관한 그의 대표적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박은식이 한국사 서술에 힘쓴 것은 단순히 학문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 저술 자체를 독립운동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한국통사』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국민들에게 민족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한민족은 반드시 광복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민족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한국사를 탐구한 민족주의 사학자였으며, 근대적 역사 서술 방식에 의해 쓰인 『한국통사』와 이 책에 의해 민족주의 사학이 본격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국권 상실 이후 한국 최초로 쓰인 독립운동사 개설서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통사』에서 1864년(고종 1)부터 1911년까지의 사실을 다루었기 때문에, 중복되는 부분을 재정리하고 여기에 1920년까지의 사실을 추가함으로써, 1864년부터 1920년까지의 한국 근대사를 체계화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독립운동사 개설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귀중한 자료집이기도 하다. 또 갑신정변부터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독립운동사의 시기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