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수문장, 훈련원봉사, 북영장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성재(聖哉)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정묘호란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627년(인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수문장(守門將)|훈련원봉사
  • 출생 연도1578년(선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수문장, 훈련원봉사, 북영장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성재(聖哉). 아버지는 한언당(韓彦棠)이다. 1593년(선조 26) 조정에서 군대를 모으는 방편으로 무과를 자주 열자, 16세의 나이로 종형(從兄) 한억류(韓億瑠)와 함께 무과에 급제하고 싸움터로 나갔다.

왜란이 끝난 뒤 공로를 인정받아 수문장(守門將)·훈련원봉사를 역임하였고,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북영장(北營將)으로 안주산성에서 청나라 군대를 막았다.

힘껏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자 좌영장(左營將) 개천군수 장돈(張暾), 훈련원봉사 김언수(金彦守)·함응수(咸應守) 등 12인과 함께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순절하였다.

1681년(숙종 7) 승지 정유악(鄭維岳)의 주청에 의하여 정묘호란 당시 안주성에서 순절한 충신들을 위한 충민사(忠愍祠)가 설립되자, 그는 그곳 동무(東廡)에 배향되고 이듬해 훈련원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