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병조판서, 한성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94년(정조 18) 승지에 오른 뒤 이조참의를 거쳐, 1798년 예방승지가 되었다. 이 때 황해도감영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자 근간에 공해(公廨)의 화재가 많은 것을 들어 영속리(營屬吏)를 엄히 문책해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을 진언하였다.
1801년(순조 1) 강화유수를 역임했고, 이듬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3년 형조판서 · 지의금부사 · 한성판윤 · 병조판서 등을 지낸 뒤 1805년 대왕대비(영조의 계비 貞純王后)의 국장도감제조(國葬都監提調)가 되었다.
1806년 판의금부사가 되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조문언(趙文彦)이 군량(軍糧)을 도용하고 백성을 착취했다 해서 중형에 처할 것을 주장하다 오히려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병조판서로 복직된 뒤 비변사제조를 거쳐, 1808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안주목사 이해청(李海淸), 중화부사 이일우(李一愚) 등이 탐관오리로 형을 받게 되자 전관(銓官)으로서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 1809년 복직되어 원자탄생의 권초관(捲草官) · 금오당상(金吾堂上) · 판의금부사 · 병조판서 등을 차례로 역임한 뒤 병으로 사직하였다. 1811년 예문관제학이 되고, 이어 다시 한성판윤 ·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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