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천부사, 한성부서윤, 상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구(子耉). 부사직 한경남(韓敬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의정 한응인(韓應寅)이고,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 한덕급(韓德及)이며, 어머니는 동지돈녕부사 김장생(金長生)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김장생(金長生)과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1633년(인조 11) 생원과 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1635년 성균관에 들어가 동료 유생들과 함께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상소하였다가 허락되지 않자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은거하였다.
그 뒤 아버지의 요청으로 벼슬길에 나가 음보로 감찰이 되었으며, 이어서 공조좌랑·예산현감·의금부도사·사도시주부·종묘서영·안성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효종의 북벌계획을 도와 강화를 요새화하는 데 힘썼다. 그뒤 호조정랑을 거쳐, 이천부사·한성부서윤·대구부사를 지낸 뒤 상주목사에 재직중 임지에서 죽었다. 참판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송자대전(宋子大全)』
- 『명재유고(明齋遺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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