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포재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이건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8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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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 학자, 이건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58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58년(영조 34) 홍봉한(洪鳳漢)의 주관으로 간행되었다. 권말에 이건명의 손자 이복상(李復祥)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10권 5책. 활자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국민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311수, 권3∼7에 소차(疏箚) 108편, 계사(啓辭) 19편, 권8에 수의(收議) 20편, 전(箋) 4편, 과제(課題) 2편, 교서(敎書) 7편, 비답(批答) 3편, 애책문(哀冊文) 1편, 권9에 서(序) 5편, 기(記) 2편, 제발(題跋) 4편, 잡저 4편, 묘갈명 2편, 묘지명 2편, 묘표 1편, 행장 3편, 권10에 제문 34편, 애사 4편, 서(書) 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자연을 읊은 것과 청나라에 사신으로 내왕하면서 지은 서사시(敍事詩), 그밖에 차운시(次韻詩)·만시(挽詩) 등이다. 소는 대개 사직소·서원청액소(書院請額疏)·건의소(建議疏)로 나눌 수 있다. 1697년(숙종 23) 응교(應敎)로 재직할 때 올린 「진계소(陳戒疏)」는 시폐(時弊)를 지적하여 제왕이 취해야 할 도리 및 경세(經世)·이민(理民)의 방책을 건의한 것이다. 왕이 솔선하여 예(禮)와 의(義)로 다스려야 이민이 되며, 병제(兵制)·양역(良役)·전정(田政) 등 3대 강령 및 역대 성군의 치적을 본받아야 치세(治世)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논양사소(論兩司疏)」는 1694년 갑술옥사로 인해 위리안치(圍籬安置)된 목내선(睦來善)·김덕원(金德遠) 등에게 육지 이배(移配)의 감형을 취한 데 대해 그 부당함을 주장한 것이다. 「청균견조지령소(請均蠲租之令疏)」는 1701년 충주목사로 재직할 때 여역(癘疫)으로 인해 향민이 많이 희생되었음을 알리고, 부역을 면제해 줄 것과 조적(糶糴)을 합리적으로 처리해 주기를 청원하는 내용이다.

「논군제소(論軍制疏)」는 군제의 개선에 관해 논한 것이다. 부병제(府兵制)가 가장 합리적이며 장정제(長征制)가 가장 불합리하다고 설명하고, 송나라의 장정제와 유사한 훈련도감의 개혁을 청원하였다. 「청변통정례소(請變通政例疏)」는 관료의 전임을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특히 지방 수령들과 무관직에 치중하여 차선(差選)을 개선하기 위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밖에 「진소회차(陳所懷箚)」·「기해의상차(己亥擬上箚)」·「인헌부계사인구차(因憲府啓辭引咎箚)」 등 수십 편의 소차가 있다.

계 중 「청기전제역지폐일체혁파계(請圻甸除役之弊一切革罷啓)」는 대사간에 재직할 때 올린 글이다. 기전에 부역을 면제해 주는 폐단을 모두 혁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소차·계사·수의·교서 등은 당시 정치 및 사회 사정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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