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과잉인구 또는 과잉노동력이 경제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경우, 노동력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특정국가에 그 인력을 수출함으로써, 국내의 실업 감소, 외화획득, 기술습득, 문화교류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방법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외취업은 국가정책에 의한 수동적인 것이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국내에 필요한 인력 뿐만 아니라 고급 두뇌인력이 자신에 맞는 노동조건과 쾌적한 생활환경을 찾아 능동적으로도 해외취업에 나서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근대적 의미의 해외취업은 1900년을 전후하여 일제에 의하여 이루어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의 취업이민을 들 수 있으며, 일제에 의한 토지수탈과 농촌의 궁핍화로 인한 대륙으로의 유랑이민이나 일본으로의 취업, 또 제2차세계대전 중의 징용에 의한 인력의 대량송출 등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해외취업은 1963년 12월에 체결된 한·독 양국 정부간의 ‘서독파견 한국광부 임시고용계획’(각서)에 의거하여 1차로 247명의 광부가 서독에 취업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1965년에는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간호원의 서독 진출이 행하여지게 되었다.
일본으로의 취업은 1965년 간호훈련생을 비롯한 기술훈련생들을 시발로 1967년 이후 연예인들의 진출도 시작되었다. 동남아시아지역으로의 취업은 1965년의 국군 파월을 계기로 대량 해외취업이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 말레이시아로의 의사 진출, 1966년 태국으로의 현대건설의 진출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국내 기업들의 동남아시아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미국에 대한 인력 진출은 미국 본토와 미국령 괌도를 중심으로 남태평양 도서지역과 중남미에까지 확대되었다. 특히, 미국 본토는 1965년부터 매년 수십명에서 수백명에 달하는 인력이 꾸준히 진출하였으며, 1969년에는 중앙산업이 괌도의 군사시설건설공사에 참여하게 되어 괌도가 새로운 노동시장으로 개척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남미에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취업이민이 이루어졌으며, 1973년 이후로는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취업이민이 실시되었다. 또한, 1960년대 초반 이후 국제해운계에서 우리 선원들의 우수한 자질이 인정되어 선원의 해외송출이 매년 증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인력의 해외취업이 시작된 것은 중동 산유국들이 유가 상승으로 획득한 오일달러로 자국내에 건설붐을 일으킨 1976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우리의 산업역군들이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 지역에 진출하여 한국인의 우수한 기술과 근면성을 과시함과 동시에 외화획득을 통하여 국가경제 발전과 국위선양에 크게 기여하여왔다.
그러나 중동의 건설붐은 제1차석유파동 이후 세계경기의 침체와 에너지의 탈석유화, 대체에너지의 개발, 중동 이외 지역에서의 원유시추 및 생산에 의한 세계 원유공급량의 과잉 등으로 이들 중동 산유국들의 오일달러가 줄어들면서 자국내의 건설계획 등을 축소하면서 우리의 인력수출이 격감되고, 또 동남아시아 및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이 중동으로 대량 유입됨으로써 우리의 인력수출이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해외취업의 확대를 위한 정부의 정책을 보면, 1965년 10월에 한국해외개발공사를 설립하였고, 1966년 5월에는 해외취업업무를 노동청으로 일원화하였다. 1971년 10월에는 재단법인 국제기능개발협회를 설립하여 민간단체에 의한 해외취업의 전문화를 시도하였다.
1981년에는 해외취업업무를 개방하여 1983년에 11개, 1984년에 17개의 민간단체가 설립되어 이 업무를 수행하였다.
1982년 10월부터는 해외취업 희망자 등록 및 알선제도를 처음 실시하고, 1983년 4월부터는 해외취업 알선업무를 노동부 각 지방사무소에 위임, 시행하게 하였다.
1984년부터는 해외취업 희망인력 등록제도를 도입, 시행함과 동시에 등록 및 알선업무를 전산화하면서, 해외취업 희망자에 대한 균등한 기회 부여와 인력공급을 가능하도록 하여 해외취업질서 확립 및 기업체의 인력모집 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제도를 크게 개선하였다.
우리 나라의 해외인력진출은 1963년 이래 1989년 말까지 총 201만 명에 달하였다. 이를 연도별로 보면 1963년부터 1985년까지 160만 명이 진출하였고, 1986년에는 12만 4032명, 1987년에는 11만 4930명, 1988년에는 9만 9507명, 그리고 1989년에는 7만 6127명이 진출하였다.
지역별로는 중동지역이 가장 많아 64%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직종별로 보면 건설·토목관련 직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선원·단순노무·운전정비직·의료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해외취업에 의한 외화획득액도 막대하여 1963년 이후부터 1989년까지 총 171억 달러에 달하였다.
그러나 1983년에는 중동 산유국에서의 건설경기 부진으로 외화획득액도 감소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경제의 침체에 그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해외인력진출이 독일·월남·중동 등 특정국가나 지역에 편중된 탓도 크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해외시장의 다변화, 즉 동남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적극적인 해외인력진출의 시도가 요구됨에 따라 1990년 초부터 이곳으로의 해외취업도 소수나마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산업발전에 따른 노동인력의 수급은 오히려 외국의 노동자를 불러 들이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해외취업도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서는 다소 후퇴하게 되었으나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경기가 급속히 악화됨과 동시에 기업의 구조조정 등으로 실업자가 급속히 증대됨에 따라 1998년 정부는 해외취업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했다.
실업대책의 하나로 정부는 해외취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1998년 3월 '국외취업 활성화 방안'을 마련한데 이어 '하반기 실업대책'에서 해외취업을 정부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노동부는 공공부문의 국외취업 업무를 재개하기 위해 1998년 5월 외교통상부와 협의하에 한국국제협력단과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업무 연계체계를 구축하였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 해외취업센터를 설치하였으며, 현재 부산·대전·광주·대구광역시 네 곳에 해외취업 상담센터를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그 결과 1998년 해외취업 인원은 선원송출 8,241명을 포함해 총 1만3529명이나 되었다. 이후 1998년 외국업체의 우리 인력에 대한 수요는 2,858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외국업체 가운데는 구인수요를 명시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실제 총수요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인수요를 업종별로 보면 산업인력공단이나 민간직업소개소 모두 전산직에 대한 수요가 각각 534명과 1,75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는 전체 인력수요의 80.0%에 해당한다. 전산직 다음으로는 건설인력에 대한 수요가 260명이다.
지역별 수요를 살펴보면 미국이 1,716명으로 가장 많아 전체 수요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이 가운데 전산인력에 대한 수요가 1,600명으로 대부분이었다. 캐나다의 인력수요는 401명으로 전체 수요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산인력에 대한 수요는 391명으로 캐나다의 인력수요 중 97.5% 점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83명의 인력 가운데 271명이 전산인력으로, 전산인력의 수요비중이 95.8%를 나타내고 있고 싱가포르는 292명 중 260명이 건설인력이며, 이에 대한 수요도 89.0%를 차지하고 있다.
향후 해외취업의 특징과 전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98년 외국업체의 구인현황을 보면 과거와는 달리 직종별로 전산직과 같은 전문직에 대한 수요가 많다. 이러한 형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과거 중동 지역에 건설인력이 진출하였을 때와 같이 대규모의 집단형태의 취업보다는 소규모 개별형태의 취업이 주종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다.
셋째, 지역별로 볼 때 유럽지역으로의 진출은 매우 어렵다.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이 고실업의 문제를 안고 있고 또한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동유럽으로부터 많은 인력이 유입되어 국내 인력이 이 지역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미국 노동시장에서 초과 수요가 발생하는 직종이나 과학 및 기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문호가 더욱 개방되고 있으며, 캐나다의 경우도 연간 목표나 제한을 설정하여 이민자 수를 제한하고 있으나 한시적 체류 근로자나 이동력 이주자의 수는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의 수요는 더욱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외취업이 국내의 과잉노동력을 해소시키면서 국내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고급 두뇌와 첨단기술인력의 지나친 해외유출로 인하여 국내의 첨단산업 등과 같은 업종에서 노동력 부족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국가의 경제성장에 저해요인이 됨은 물론 국가경쟁력의 기초가 되는 두뇌집단과 고급기술의 국가경쟁력의 유출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해외취업진출에 대한 정책은 먼저 국내의 노동시장의 환경을 국부나 국가경쟁력과 결부시켜 조성한 다음 인력수급 사정을 고려하여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