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기 ()

불교
인물
남북국시대, 일본에서 승단의 최고직인 대승정에 오른 백제계 일본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668년
사망 연도
749년
출생지
일본 가와치노쿠니 오토리군(현 오사카부 사카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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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행기는 남북국시대 일본에서 승단의 최고직인 대승정에 오른 백제계 일본 승려이다. 대중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동시에, 수리 사업과 빈민 구제 등을 통해 일본 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도다이지 대불 조성에 참여하면서 불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일본 최초로 대승정에 임명되었다. 후대에 불교의 사회적 실천의 상징으로 추앙받았다.

정의
남북국시대, 일본에서 승단의 최고직인 대승정에 오른 백제계 일본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행기의 아버지는 고시노 사이치[高志才智], 어머니는 하치다노 코니히메[蜂田古爾比賣]이며, 가와치노쿠니[河內國] 오토리군[大鳥郡, 지금의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백제 왕족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어머니는 하치타씨[蜂田氏]의 맏딸이었다. 그의 출신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왕족 혈통으로서의 고귀한 출신이 강조된다.

주요 활동

15세에 다이칸다이지[大官大寺]에서 출가하였다. 24세 때인 693년에 다카미야데라[高宮寺] 덕광(德光)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고, 도쇼[道昭]와 함께 유가유식(瑜伽唯識)을 공부하였다. 704년에 집으로 돌아와 옛집을 절로 고치고 어머니를 봉양하여 재가사(在家寺)의 시조가 되기도 하였다.

민중과 더불어 관법과 정업을 닦아 추종한 자가 1,0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제자들과 전국을 순행하면서 교량 건설, 제방 공사, 도로 보수, 전답 개간, 항구 건설 등 민중을 위한 복리 사업을 도모하였다. 특히 다리 건설, 수로 개척, 저수지 조성 등은 당시 일본 사회의 농업 생산성 증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행기는 교단을 벗어나 활동했기 때문에 조정의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어 여러 차례 탄압받았다. 717년에는 그의 집단이 '민중을 현혹한다'는 이유로 금지를 당하기도 하였다.

726년에 야마사키바시[山崎橋]를 조성하고 대법회를 개설하였다. 731년에는 사야마이케[狹山池]를 개수하였고, 행기를 따르는 주1 · 주2 가운데 노령인 사람은 출가를 허락하여 수행을 자유롭게 하였다. 731년 이후에는 행기의 영향력과 민중적 지지로 인해 조정도 태도를 바꾸어 그의 공적을 인정하였다. 733년에는 곤요지[昆陽寺]를 창건하여 스스로 조각한 약사여래와 11면관음상을 안치하였다. 또한 온천을 개발하였고, 세야쿠인[施藥院]을 두어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을 간호하였다.

743년에는 쇼무 덴노[聖武天皇]의 요청으로 도다이지[東大寺] 대불(大佛) 건립에 참여하였다. 그는 도다이지 대불 조성을 위한 주3을 담당하며 불교계에서 지도자로 자리매김하였다. 745년에는 일본 승단의 최고직인 대승정(大僧正)에 최초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행기를 따르는 승도가 3,000명이나 되었다. 749년 82세에 입적하여 이코마산[生駒山] 동악에 장사하였다.

행기는 일본 불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데, 특히 그의 사회적 실천은 불교의 대중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민중을 위한 불교적 실천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얻은 그는 후대에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았다. 도다이지 대불 건립에서 보여준 지도력은 불교와 사회의 연결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또한, ' 문수보살의 화신'으로도 여겨져 불교계뿐 아니라 일본 민중 속에 그에 대한 신앙이 깊이 자리 잡았다.

학문과 저술

행기의 사상은 법상종 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학문적 연구보다는 사회적 실천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학문적 저술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원전

『행기대보살행장기(行基大菩薩行狀記)』
『속일본기(續日本紀)』

단행본

速水侑, 『民衆の導者行基』(東京:吉川弘文館, 2004)
井上薰, 『行基』(東京:吉川弘文館, 1992)

논문

최복희, 「백제계 행기(行基)의 미륵정토(彌勒淨土)에 대한 고찰」(『한국불교사연구』 9,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2016)
주석
주1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 우리말샘

주2

불교를 믿고 삼귀(三歸), 오계(五戒)를 받은 세속의 여자. 우리말샘

주3

절을 짓거나 불사를 위하여 신자들에게 보시(布施)를 청함. 우리말샘

집필자
박보람(충북대학교 교수, 화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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