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행주’란 그릇을 훔치거나 씻을 때 쓰는 헝겊을 말하는데, 행주치마는 이러한 용도도 겸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 같다.
최세진(崔世珍)이 1517년(중종 12)에 편찬한 『사성통해(四聲通解)』, 1527년(중종 22)에 편찬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ᄒᆡᇰᄌᆞ쵸마’가 보인다.
일설에는 1593년(선조 26) 2월 행주산성에서 권율(權慄)이 왜병을 맞아 싸울 때, 성 안의 부녀자들까지 합세하여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당시의 부녀자들의 공적을 기리는 뜻에서 치마의 명칭에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일컫게 되었다고도 한다.
흰색 무명류를 사용하여 치마의 반폭 정도로 만들어 뒤가 휩싸이지 않게 하였고, 길이는 치마보다 짧게 만들었다. 걸을 때나 일할 때에는 치마가 늘어지는 불편을 덜기 위하여 위를 걷어올리고 허리띠로 매어 ‘거들치마’를 하였는데, 그 위에 행주치마를 둘렀다. 행주치마를 입고 일을 하다가도 웃어른 앞에 나설 때에는 반드시 이를 벗는 것이 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