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성진 출생. 이명(異名)은 허국택(許國澤)·허영식(許永植). 1927년 반일운동에 투신하였다. 1932년 1월 제2차 성진농민조합 지도부 건립에 참여하고 선전부장이 되었다.
1933년 웅기지역에서 항만노동자서클을 조직했으며, 같은 해 소련으로 망명하여 1934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대학을 졸업하였다. 1935년 7월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하였다. 귀국 후 함북지방에서 당 재건운동 및 농민조합운동에 종사하였다.
1936년 제3차 성진농민조합사건으로 구속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이후 국내 공산주의자인 김채룡(金采龍)·오기섭(吳淇燮) 등과 연락하면서 국내 공산당조직활동에 종사하였다.
1945년 9월 조선공산당 출범시 중앙위원(중앙 서기국원), 1945년 11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위원장, 1946년 2월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부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 9월 전국 총파업 지도부를 설치하고 남한 총파업을 지도하였다. 11월 남조선노동당 결성에 참가하고 중앙위원이 되었다. 1947년 2월 검거되어 1년간 복역하였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남조선 대표로 참석하였다. 1948년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상, 1949년 6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 1954년 교통부상(副相)을 역임하였고, 19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정위원 겸 중앙검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1956년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 1957년 5월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 8월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7년 9월 석탄공업상이 되었다. 1958년 5월 노력훈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