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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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법제
인물
북한에서, 군수공장 지배인, 내각 기계공업위원회 위원장, 정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북한의 중공업 발전에 기여한 관료.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3년
사망 연도
1992년 3월
출생지
함경남도 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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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에서, 군수공장 지배인, 내각 기계공업위원회 위원장, 정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북한의 중공업 발전에 기여한 관료.
내용

함경남도 홍원 출생. 기계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서을현·정일룡(鄭一龍)과 함께 광복 후 충원된 노동계급 출신의 대표적인 당 간부이다.

일제강점기 때 머슴살이와 철도공사판 노동자로 생활하다 일제에 의해 징용되어 성진제강소에서 일하였다. 1937년 민족해방동맹의 정치공작원으로 공산주의운동에 종사하였다. 함흥에서 적색노조운동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가 광복 직후 출옥하였다.

그 뒤에 적위대를 조직하고 공장을 복구정비하는 일을 하였고, 이후 조선공산당 함경남도당 조직부 과장, 흥남 용성기계공장 공산당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6년 1월 제강소 당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1948년 1월평양시 평천리에 있던 25호 공장 공장장으로 임명되어 기관단총을 처음으로 생산하였다.

6·25전쟁 중 군수공장이었던 64호·57호 군수공장의 지배인이자 당위원장으로 평안남도 강계와 성천·평천 등지에 지하공장을 건설 확장하고 소총·기관총·박격포·수류탄·반전차탄 등의 무기를 생산 조달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53년 소련 고급당학교에 유학하여 고급당료로 정치이론 수준을 체득하였다.

1956년 졸업한 뒤에 귀국하여 노동당 함경남도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제2기∼제9기 대의원, 1958년 노동당 함경남도당 위원장, 1960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중공업 부장, 1961년 9월 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위원회 중공업부 부장, 1962년 노동당 함경북도당 위원장, 1963년 내각 기계공업위원회 위원장(기계공업위원회가 기계공업성으로 개칭되자 기계공업상)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리고 1967년 전기기계공업상, 1970년 11월 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비서국 비서, 1971년 9월 함경남도 당 책임비서, 1972년 교통운수체신위원회 위원장, 1977년 6월 함경북도인민위원회 위원장, 함경북도당 책임비서, 1980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노동당 청진시당 책임비서, 1982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1984년 정무원 부총리, 1986년 12월 중앙인민위원회 위원, 국가검열위원회 위원장 등 요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김일성훈장·노력영웅칭호 등을 수여받았다. 북한 중공업의 창설 및 강화·발전의 주역이고, 군수공업을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기계공업기술 뿐 아니라 공장관리 및 운영면에서도 경험과 능력이 풍부하였다. 비공식적으로 경제기술과학대표단을 이끌고 소련·중국·동독 등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다. 1992년 3월 사망하자 국장(國葬)에 치러졌고, 평양 신미리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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