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전(許有全, 1243~1323)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1274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전라도안찰사(全羅道按察使), 감찰대부(監察大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고 1321년(충숙왕 8)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에 이어 정승(政丞)에 이르렀다. 1323년(충숙왕 10)에 사망하여 강화도에 묻혔다. 허유전이 사후에 강화에 안장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85년 후손인 허관구(許官九)에 의해 무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1988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내부 구조가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길이 2.5m, 너비 1.05m, 깊이 67㎝의 토광을 판 뒤 토광 벽에 판석을 대고 바닥에 석재를 부설한 돌덧널무덤[石槨墓]의 형태로 밝혀졌다. 묘광의 주변에는 ∩자형의 곡장이 설치되었다. 발굴 당시 분묘는 이미 도굴된 상태였는데 청자잔과 도기병, 관정, 11~12세기대 중국 동전 등이 수습되었고 유골인 엉치뼈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허유전의 묘는 강화군 진강산 서쪽에 접해 있는 덕정산(320m) 동쪽 능선의 남동향에 위치해 있다. 현재 묘역은 발굴 조사 이후 복원 · 정비된 것이다. 묘역의 위쪽에는 곡장으로 둘러싼 봉분이 자리해 있으며 전면 좌, 우측에 묘표(墓表) 2기가 배치되어 있다. 봉분 전면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곡장에 잇대어 장방형으로 2개의 단을 조성하였다. 이 가운데 2번째 단에는 석인상 2기가 양쪽에 각각 배치되어 있다. 각 단의 규모는 1단이 너비 4.9m, 폭 1.2m, 2단은 너비 4.9m, 폭 1.7m이다.
봉분은 한 변의 길이가 약 4.9m인, ∩자형 곡장 위에 흙을 방대형(方臺形)으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곡장의 전면은 다른 3면보다 높이가 낮은 석축(石築)을 쌓아, 사방이 막힌 형태를 이룬다.
석인상은 높이 약 105cm, 두께 약 17cm이며 사각 기둥 형태의 몸체에 복두를 쓴 머리가 조각된 모습이다. 고려시대 석인상의 형태이나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어 세부적인 특징은 파악하기 어렵다. 묘역 아래쪽에는 현대에 조성한 묘비와 상석(床石),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고 재실인 두산재(斗山齋)가 자리한다.
발굴 이후 후손들이 봉분과 묘역을 정비하고 재실을 설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7년 2월 12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허유전 묘는 피장자가 알려진 고려시대 무덤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묘제를 이해하는 데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고려 후기 문신 허유전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