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전 묘

  • 역사
  • 유적
  • 고려 후기
  • 시도자연유산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허유전의 무덤.
이칭
  • 이칭가락 허시중공 무덤
유적/고인돌·고분·능묘
  • 건립 시기고려 후기
  • 관련 국가고려
  • 관련 단체김해허씨시중공파중앙회
  • 관련 인물허유전
  •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 양식석곽묘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최종수정 2023년 0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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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허유전 묘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허유전의 무덤이다. 1985년 후손에 의해 존재가 알려졌고 1988년 발굴 조사를 통해 돌덧널무덤 구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무덤은 고려시대 묘제와 허유전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허유전의 무덤.

건립경위

허유전(許有全, 1243~1323)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1274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전라도안찰사(全羅道按察使), 감찰대부(監察大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고 1321년(충숙왕 8)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에 이어 정승(政丞)에 이르렀다. 1323년(충숙왕 10)에 사망하여 강화도에 묻혔다. 허유전이 사후에 강화에 안장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85년 후손인 허관구(許官九)에 의해 무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발굴 경위 및 결과

1988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내부 구조가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는 길이 2.5m, 너비 1.05m, 깊이 67㎝의 토광을 판 뒤 토광 벽에 판석을 대고 바닥에 석재를 부설한 돌덧널무덤[石槨墓]의 형태로 밝혀졌다. 묘광의 주변에는 ∩자형의 곡장이 설치되었다. 발굴 당시 분묘는 이미 도굴된 상태였는데 청자잔과 도기병, 관정, 11~12세기대 중국 동전 등이 수습되었고 유골인 엉치뼈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형태와 특징

허유전의 묘는 강화군 진강산 서쪽에 접해 있는 덕정산(320m) 동쪽 능선의 남동향에 위치해 있다. 현재 묘역은 발굴 조사 이후 복원 · 정비된 것이다. 묘역의 위쪽에는 곡장으로 둘러싼 봉분이 자리해 있으며 전면 좌, 우측에 묘표(墓表) 2기가 배치되어 있다. 봉분 전면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곡장에 잇대어 장방형으로 2개의 단을 조성하였다. 이 가운데 2번째 단에는 석인상 2기가 양쪽에 각각 배치되어 있다. 각 단의 규모는 1단이 너비 4.9m, 폭 1.2m, 2단은 너비 4.9m, 폭 1.7m이다.

봉분은 한 변의 길이가 약 4.9m인, ∩자형 곡장 위에 흙을 방대형(方臺形)으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곡장의 전면은 다른 3면보다 높이가 낮은 석축(石築)을 쌓아, 사방이 막힌 형태를 이룬다.

석인상은 높이 약 105cm, 두께 약 17cm이며 사각 기둥 형태의 몸체에 복두를 쓴 머리가 조각된 모습이다. 고려시대 석인상의 형태이나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어 세부적인 특징은 파악하기 어렵다. 묘역 아래쪽에는 현대에 조성한 묘비상석(床石),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고 재실인 두산재(斗山齋)가 자리한다.

현황

발굴 이후 후손들이 봉분과 묘역을 정비하고 재실을 설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7년 2월 12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 및 평가

허유전 묘는 피장자가 알려진 고려시대 무덤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묘제를 이해하는 데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고려 후기 문신 허유전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단행본

  • - 『가락허시중공무덤발굴조사보고』(한국선사문화연구소·김해허씨시중공파중앙회, 1988)

  • - 『강화의 고려 고분』(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3)

  • - 『강화 고려 도성 고고 자료집』(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2017)

  • 논문

  • - 주영민, 『고려 지방 분묘 연구』(경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 인터넷 자료

  • -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 -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

주석

  • 주1

    :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우리말샘

  • 주2

    :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조형물. 우리말샘

  • 주3

    : 고려 시대에 감찰사(監察司)에 둔 으뜸 벼슬. 정삼품으로, 공민왕 11년(1362)에 어사대부를 고친 것이며 충렬왕 34년(1308)에 대사헌으로 고쳤다. 우리말샘

  • 주4

    : 고려 시대에, 밀직사에 속한 종이품 벼슬. 충렬왕 원년(1275)에 지추밀원사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 주5

    : 고려 시대에 둔, 종일품의 으뜸 벼슬. 충렬왕 34년(1308)에 시중(侍中)을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 주6

    : 땅이 움푹하게 파인 곳. 우리말샘

  • 주7

    : 지하매장시설을 보호하거나 표시하는 지상시설물인 봉분, 봉분을 보호하는 호석이나 주구, 그리고 제사유구 등 외부시설에 대응되는 내부시설인 매장주체부는 시신이나 관을 비롯하여 부장품을 직접 보호하는 시설이다. 바로가기

  • 주8

    :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石材)로 덧널을 만든 무덤. 삼국 시대에 사용했으며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샘

  • 주9

    : 판자 모양으로 가공되어 바닥이나 벽면에 붙이는 석재. 암석 가운데 15~38cm의 납작하고 편평한 암석을 말한다. 지붕, 바닥, 벽면이나 도로 따위에 이용된다. 우리말샘

  • 주10

    : 무덤 칸이나 곽 또는 관을 넣기 위하여 판 구덩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11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 주12

    :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리기도 하고 돌로 평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대개 묘석을 세워 누구의 것인지 표시한다. 우리말샘

  • 주13

    : 법적 수속이나 관리자의 승낙을 받지 않고 고분 따위를 파거나 광물을 캐냄. 우리말샘

  • 주14

    : 널을 짜는 데에 쓰는 못. 우리말샘

  • 주15

    : 척추의 아래 끝부분에 있는 이등변 삼각형의 뼈. 외측면의 우묵한 곳에서 넙다리뼈와 연결된다. 우리말샘

  • 주16

    :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무덤을 만듦. 또는 그 무덤. 우리말샘

  • 주17

    : 내각(內角)이 모두 직각인 사각형. 주로 정사각형이 아닌 것을 이른다. 우리말샘

  • 주18

    : 돌로 쌓아 만든 옹벽. 산을 깎거나 흙을 모아 토대를 쌓을 때에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돌로 쌓는다. 우리말샘

  • 주19

    : 조선 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를 받을 때 쓰던 관(冠). 사모같이 두 단(段)으로 되어 있으며, 위가 모지고 뒤쪽의 좌우에 날개가 달려 있다. 우리말샘

  • 주20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 주21

    :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 죽은 사람의 신분, 성명, 행적, 자손, 출생일, 사망일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 주23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 주24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 주25

    : 무덤에 매장되어 있는 사람. 우리말샘

  • 주26

    : 일이 있는 바로 그 시대. 우리말샘

  • 주27

    : 묘에 대한 관습이나 제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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