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천녕(川寧). 초명은 응원(應遠). 자는 사열(士說), 호는 엄산(弇山). 사자관(寫字官) 김천수(金天秀)의 외손이다.
1790년(정조 14) 의과(醫科)에 급제하여, 장영감서(壯營監書)를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써서 정조로부터 벼루를 하사받았으며, 한때 편장(扁障)·비판(碑版)을 많이 썼다고 한다.
특히 초서에 뛰어났는데, 속도감이 넘치는 독특한 운필(運筆)로 일가를 이루어 엄산체라 불렸다. 우리나라의 옛 글씨를 모사하여 『초휘(草彙)』를 편집하였는데, 그 내용이 충실하여 신위(申緯)·김정희(金正喜)로부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