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서(新唐書)』에 기재되어 있는 62주(州) 중의 하나로서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에 속하였다. 한편, 『신당서(新唐書)』 지리지에 실려 있는 가탐(賈耽)의 『도리기(道里記)』에는 천보(天寶, 742∼755)중에 이곳으로 도읍을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다음의 두가지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첫째, 현주가 중경현덕부의 수주(首州)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신당서(新唐書)』 지리지에는 노주(盧州)를 현주의 앞에 두었으나 가탐의 『도리기(道里記)』를 살펴보면 현주가 수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하여, 일부에서는 현주는 수주가 아니며, 따라서 그 위치도 길림성(吉林省)화룡현(和龍縣)서고성자(西古城子)로부터 약 7㎞ 서쪽에 있는 안도현(安圖縣) 대전자토성(大甸子土城)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현주를 수주로 인정하는 경우, 즉 중경현덕부가 발해의 첫 도읍지였던 ‘구국(舊國)’이었느냐의 여부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혜공주묘비(貞惠公主墓碑)의 발견을 계기로 길림성 돈화현(敦化縣) 오동성(敖東城)을 주장하는 설과 중경현덕부가 첫 도읍지였음을 주장하는 설이 대립되어 있다.
현주 아래에 금덕(金德)·상락(常樂)·영풍(永豊)·계산(雞山)·장녕(長寧)의 5개 속현이 있었으며, 금덕현이 수현(首縣)이었다. 이곳의 특산물로는 삼베[麻布]가 유명한데, 발해시대에 배구(裵璆)를 후당(後唐)에 보내어 세포(細布)를 바치게 한 적이 있고, 또 세백포(細白布)로써 거란과 교역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