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한(錢鎭漢)을 중심으로 일본에 있는 유학생들이 1926년 6월 ‘① 중간이윤 철폐, ② 고리대 구축, ③ 경제적 단결, ④ 자주적 훈련’ 등 일제의 식민지 착취를 배제하고 농민의 경제적 권익을 보호, 증진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기본강령으로는 ‘① 우리는 협동자립정신으로써 민중적 산업의 관리와 민중적 교양을 기한다. ② 우리는 이상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조합정신의 고취와 실지 경제를 기한다.’ 등을 정하였다. 그리고 기관지 『조선경제(朝鮮經濟)』를 발간하는 한편, 방학을 이용해 국내에서 협동조합운동의 취지를 선전, 강연하며 조합의 조직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1927년 1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咸昌)에서 첫번째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1927년 11월 「협동조합운동의 실제」라는 팸플릿을 제작하여 전국에 배포하며 조직을 확대하는 데 힘을 모았다.
1928년 4월 1일에는 본부를 동경에서 서울로 옮기고, 순회강연을 통해 조합 설립에 더욱 힘을 기울여 충청도와 경상도에 조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11월 현재 조합 22개, 조합원 5, 000명에 자본금 4만 5000원을 보유하였다.
이즈음 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식민지 수탈을 강화하는 일제에 대항, 조합의 조직은 더욱 증가하여 함경남도에도 조합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전진한 등 조합간부가 검거되고, 또 경영난과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일제가 해산 명령을 내려 결국 1933년경 해체되고 만다.
이 단체는 농민의 궁박한 생활을 극복하고, 농촌의 불황을 타개하려는 농민들의 권익운동일 뿐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대항하는 점에서 항일농민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소작쟁의로 나타난 소작농민운동과는 달리 어느 정도의 경제 기반을 가지고 있는 자작농의 농민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