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영감설화」는 한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속여서 혹을 떼고 부자가 되었는데, 이를 흉내 낸 다른 혹부리 영감은 혹을 더 붙이게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1910년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의 『조선물어집(朝鮮の物語集附俚諺)』에서 「유취(瘤取)」가 소개되었으며, 1915년 『조선어독본』에 「혹잇는老人」으로 수록되었다. 유사한 내용의 「도깨비방망이설화」와 달리, 「혹부리영감설화」의 주인공은 선하거나 효자라는 속성이 나타나지 않아 권선징악의 주제 의식과 교훈적 성격이 약한 편이다.
소화(笑話) 중 모방담(模倣譚)에 속한다. ‘혹 떼러 갔다 혹 붙인 영감’,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 등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 모방담의 형식은 범세계적이며, 「 도깨비방망이설화」 · 「여우 잡은 소금 장수」 · 「금도끼 은도끼」와 같은 다른 이야기에서도 같은 구조를 볼 수 있다. 조선 중기 강항이 쓴 『수은록(睡隱錄)』에 일본에서 들었다는 「유계(瘤戒)」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혹부리영감설화」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후 1910년 다카하시 도루[高橋亨]의 『조선물어집(朝鮮の物語集附俚諺)』에서 「유취(瘤取)」가 소개되고 1915년 『조선어독본』에 「혹잇는老人」이 수록된 이래로 「혹부리영감설화」는 일제강점기 교과서에 지속적으로 보인다.
혹부리 영감이 어느 날 도깨비들을 우연히 만난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도깨비들이 그 노래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자 혹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도깨비들은 그 혹을 떼고는 재물을 주고 갔고, 그 영감은 잘살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웃의 또 다른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찾아가 노래를 하였다. 노래가 나오는 곳을 묻는 도깨비들에게 혹에서 나온다 하자, 도깨비들이 거짓말쟁이라 하면서 다른 혹마저 붙여 주었다. 그 사람은 망신만 당하고 혹 하나를 더 붙이게 되었다. 각 편에 따라서 혹부리 영감 대신 ‘김첨지’, ‘최영감’ 등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고, 혹을 떼는 부분에서 도깨비와 흥정하는 장면이 흥미롭게 부연되기도 한다.
「혹부리영감설화」가 한국 고유의 설화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혹부리영감설화」가 조선 후기 문헌설화집에서 찾아볼 수 없고, 일제에 의해 1915년 『조선어독본』에 수록되면서 한국에서 전래동화로 정착되었다는 점에서 일본에서 수용된 것으로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다른 견해로는 「혹부리영감설화」는 조선 고유의 설화이며, 일본의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내선일체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 설화는 어떤 일을 앞서 행한 사람, 즉 선행자(先行者)는 행운을 얻는 반면, 모방자(模倣者)는 불운을 겪는다는 내용으로서, 창조적 행위를 긍정하고 모방 행위는 부정하고 있다. 유사한 내용의 「도깨비방망이설화」에서는 주인공이 착한 효자로 등장하여 효가 강조되고 권선징악의 주제 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혹부리영감설화」의 주인공인 영감에게는 선하거나 효자라는 속성이 나타나지 않아 권선징악의 주제 의식과 교훈적 성격이 약한 편이다. 도깨비는 양면성을 가진 골계적 존재로 나타나는데, 도깨비들이 노래가 나오는 곳을 몰라 혹을 사는 행위와 혹을 마음대로 떼었다 붙였다 하는 행위는 어리석음과 초월적인 능력을 동시에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