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서(公舒)
  • 이칭명한(鳴漢)
  • 시호효헌(孝憲)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산(豊山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 사망 연도1819년(순조 1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중화부사|한성부우윤|승지|판의금부사
  • 출생 연도1736년(영조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균 (부산수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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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명한(鳴漢). 자는 공서(公舒). 홍만회(洪萬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홍중성(洪重聖)이고, 아버지는 홍진보(洪鎭輔)이며, 어머니는 윤두천(尹斗天)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3년(영조 39) 진사가 되고, 1771년 참봉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수찬 등을 지냈다. 1779년(정조 3)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 북경에 다녀와서 그 곳의 지리·풍속과 사정 등 문견(聞見)을 왕에게 소상하게 보고하였다.

그 뒤 대사간·중화부사·한성부우윤·승지·대사성·대사헌 등을 거쳐 평안감사가 되었는데, 무열사(武烈祠)를 수축할 때 유생들로부터 돈을 거두었다는 혐의로 파직되어 금갑도(金甲島)에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서 이조참판·도승지·동래부사를 역임하고, 이어 순조대에 들어와 형조판서·수원유수·우참찬·예조판서·한성부판윤 등 내외의 요직을 두루 거쳐 판의금부사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 작품으로는 수원의 「지지대비(遲遲臺碑)」가 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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