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사육신 성삼문의 외손 엄찬이 살았던 집으로 전해온다.
성삼문은 그의 외가가 있는 이 마을 노은동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가 태어난 집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이 가옥이 그의 탄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이 가옥에는 원래 사랑채와 문간채도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안채에 붙은 익실, 중문간채만 남아있다.
안마당이 트이지 않고 사방이 막힌 ‘ㅁ’자 집이다. 평면을 자세히 보면 ‘ㅂ’자 모양이 거꾸로 배치되어 정면 쪽으로 날개부분이 빠져 나온 모습이다. 이러한 평면 구조를 ‘날개집’이라고 하는데 영남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안채의 중심부에 안대청을 두고 좌우에 안방과 건너방을 배치해 두었다. 대청 서측의 방 앞쪽으로 부엌을 두고, 부엌 상부는 누다락을 만들어 안방에서 출입하도록 하였다.
안대청의 서측 익랑은 길게 누다락을 설치하여, 하부는 광으로 쓰고, 상부는 다락방으로 쓰고 있다. 안대청의 동편에는 판벽으로 막아 곳간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서익랑의 남측 끝에는 마루칸을 두었다.
안마당은 트이지 않은 ‘ㅁ’자집으로 규모도 작아 폐쇄감이 강하다. 안채의 기단은 4자 이상으로 높여 남측 중문간채와는 단차가 심하다. 안채의 구조는 1고주 5량집으로 하고, 종보위에는 표주박 모양의 판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현재 안채를 제외한 사랑채나 부속 건물이 없어 전체적이 배치구성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가옥의 안채만으로 보면 충청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매우 폐쇄된 배치구조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급하지 않은 입지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안채의 대지는 급한 구릉에 배치시키고 있다.
이러한 배치에 따라 안마당의 폐쇄감이 강하게 되고 안대청이 높아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대청과 지붕선을 맞추기 위하여 양 익랑까지 높아지게 되었다.
양 익랑이 높아짐으로써 마치 중층과 같은 형태가 되어 익랑에 누다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배치와 건물구조는 충청지방에서 보다는 영남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치와 구조라 하겠다.
현재 없어진 부분이 있어 전체적인 배치구조를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의 평면구조에서는 사랑채로 사용하는 공간이 아주 작아서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원래는 별도로 사랑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추정하기로는 전면에 작은 마당을 두고 그 앞에 횡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었을 것을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