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명여(明汝). 영안위(永安尉)홍주원(洪柱元)의 5세손이며, 홍만용(洪萬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중기(洪重箕)이고, 아버지는 수재(守齋) 홍현보(洪鉉輔)이며, 어머니는 이세박(李世璞)의 딸이다. 좌의정을 지낸 홍인한(洪麟漢)과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洪鳳漢)은 그의 형이다.
1764년(영조 40) 인일제(人日製)에 뽑히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부수찬·부교리·부수찬·겸사서·교리·필선·수찬·부응교를 지냈으며, 1770년『증보문헌비고』의 편집에 낭청(郎廳)으로 참여하였다. 1772년 승지에 임명되었고, 1776년 의주부윤을 잠시 지냈다.
이 해 정조가 즉위하자 정조가 세손(世孫)으로 대리청정할 때 이를 극력 반대하였던 당시의 세도가 정후겸(鄭厚謙)과 홍인한(洪麟漢) 일당에 대한 처벌이 논의되자, 홍인한의 아우로서 정후겸을 아첨하여 섬기며 혼인을 약속했다는 이유로 함께 처벌해야 된다는 탄핵을 받았으나 특별히 모면하였다. 1794년(정조 18) 동지돈녕부사에 제수되었으며, 1800년 정조가 죽자 종척집사(宗戚執事)에 차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