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1997. 국가무형유산 가곡 예능보유자(1975년 지정, 1997년 해제).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서 홍성우의 5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궁내부(宮內府)에 근무했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홍원기를 음성이 좋고 사주팔자의 3기둥에 ‘예(藝)’자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이왕직아악부에 입학시켜 음악의 길로 인도했다.
홍원기는 이곳에서 2년에 걸쳐 여러 악기를 두루 익혔고, 3학년 때 비로소 가야금과 성악을 전공으로 택했다. 김영륜한테서 가야금을, 이병성과 이주환한테서 가곡 · 가사 · 시조를 배웠으며, 가무별감을 지낸 최상욱한테서 따로 음악지도를 받기도 했다.
1941년 양성소의 5년과정을 마친 뒤,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수가 되었고, 경성방송국 등의 국악 프로에 출연하기도 했다. 1946년 12월 문교부 주최 제1회 전국 음악경연대회 국악 부문에 나가 가야금으로 1등을, 시조로 2등을 수상했고, 이듬해의 경연대회에서 시조로 수석을 차지했다.
6·25전쟁중의 부산 피난시절 국립국악원 예술사로 취직하였으나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 일로 그는 국악원과 한동안 먼 관계로 지내게 되었다. 그 후 경남 진주여중에서 국어 강사를 했고, 서울 수복 후에는 서울사범학교 국어 강사로 이어졌으며, 1960년에는 한국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취임하여 1974년까지 국악개론과 시조를 가르쳤다. 1961년부터는 서울대학교 · 건국대학교 · 한양대학교 · 경희대학교 · 전남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학력으로는 청운초등학교, 이왕직 아악부, 건국대학교 국문과 학사 및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송강의 장진주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역시 건국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62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국 명인명창대회에 출연했고, 1965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하여 9년 동안 작곡 담당과 악장, 지휘자 등을 지냈다. 당시 작곡한 음악으로 「망향」 · 「회상」 · 「산장의 밤」 등이 있다.
방송 경력으로는 일제시대 경성방송국과 해방 후 KBS방송국에서 국악 해설을 담당한 것을 들 수 있다.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의 청탁으로 정악가야금과 가곡을 녹음하였고, 음반으로 출반되었다. 1974년부터 국립국악원 정악 연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75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한국전통가곡진흥원을 만들어 제자들을 육성하였으며, 가곡의 보유자 후보인 김경배와 이오규 · 이두원 · 조용석 · 김영욱 · 윤중강 · 김기철 등이 그의 제자이다. 1983년에 예술원 정회원이 되었고, 1985년 예술원 공로상, 19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