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자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해주목사,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차산(次山)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해주목사(海州牧使)|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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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해주목사,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차산(次山). 홍상보(洪尙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영(洪齡)이고, 아버지는 홍원숙(洪元淑)이며, 어머니는 영의정부사 황보인(黃甫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생원(生員)으로 1469년(예종 1) 추장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1472년(성종 3)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고, 1473년 의경왕(懿敬王)의 묘를 조성하고 신주와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드린 신하들에게 상을 줄 때 호조좌랑(戶曹佐郞)으로 참석하여 아마(兒馬) 1필이 하사되었다.

1474년 낭청(郎廳)에 이어 1477년(성종 8)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1483년 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으로 학식이 널리 통하고 일에 임하여 자세하고 민첩하여서 두루 쓸 만한 재주가 있다 하여 천거되었다.

1484년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에, 1485년 정희왕후의 부묘(祔廟: 삼년상을 마친 뒤 신주를 태묘에 모심.) 때 공이 있다 하여 한 품계를 올려 받았다. 1486년황해도와 평안도에 파견되어 각 역의 찰방(察訪)과 역승(驛丞)의 불법한 일을 살폈다.

1488년 가례도감낭청(嘉禮都監郎廳)을 거쳐 대비가 강녕한 까닭으로 논공할 때 아마(兒馬) 한 필과 활 1장이 하사되었다. 1489년금화와 평강에 내려가 수외의 군기를 적간하였으며, 체찰사(體察使) 이철견(李鐵堅)의 종사관으로 황해도 도적을 잡는 데 공을 세웠다. 1490년 통정대부(通政大夫) 해주목사(海州牧使)로, 1493년 통정대부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가 되었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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