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치경(致敬). 홍준해(洪準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병협(洪秉協)이고, 아버지는 판서 홍기섭(洪起燮)이며, 어머니는 김상임(金相任)의 딸이다.
1816년(순조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27년 한림소시(翰林召試)에 뽑혔으며, 이듬해 별겸춘추(別兼春秋)를 지냈다. 1834년 시관(試官)에 임명되었으면서도 패초(牌招: 승지에게 패를 내려 왕이 신하를 부름.)를 받고 나오지 않아 장성부(長城府)로 귀양갔다가 곧 풀려난 뒤 예방승지로 기용되었다.
1840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다음 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한성판윤·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45년 평안도지방이 극심한 수재(水災)를 당하자 백성들을 안정하여 살 수 있도록 방도를 강구하라는 특별 분부를 받고 평안도관찰사에 부임하였다.
1846년 사헌부대사헌·한성판윤, 형조·병조·공조·예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다. 1860년(철종 11) 경기관찰사를 2년간 지내고 돌아와 판의금부사, 예조판서·의정부우참찬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