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 자는 여광(汝光). 조선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18세기 초 방정식의 구성과 해법에 대하여 가장 앞선 결과를 얻어낸 『구일집(九一集)』의 저자이다.
남양 홍씨는 주학 취재에 합격한 110명 중에 100명이 홍정하의 가계에 들어 있다. 홍정하의 조부 홍서주는 1647년(인조 25), 그의 형 홍서구는 1631년(인조 9) 취재에 합격한다. 이들은 영장, 수직가선대부를 지낸 홍인남의 아들이다. 홍정하의 부친 홍재원(1682년 입격)은 경선징의 조카 경연(1653년 입격)의 사위이고, 홍정하는 이극준(1674년 입격)의 사위이다.
한편 이상혁의 부친 이병철(1799년 입격)은 홍정하의 조카 홍이록(1777년 입격)의 사위이고, 이상혁의 고조 이태윤(1716년 입격)은 홍정하와 동서이면서 홍정하의 백부 홍시원(1669년 입격)의 외손자이다. 따라서 경선징, 홍정하, 이상혁의 집안은 산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인 산원에 관한 정보는 『주학입격안(籌學入格案)』, 『주학선생안(籌學先生案)』, 『주학팔세보(籌學八世譜)』 밖에 없다. 『주학입격안』에는 15세기 말부터 1888년(고종 25)까지 취재 합격자 1,626명이, 『주학선선생안』에는 1869년까지 1,173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산서를 저술한 사람은 홍정하, 경선징(慶善徵), 이상혁(李尙爀) 세 사람 뿐이다.
홍정하는 1706년(숙종 32) 취재에 입격한 후 1718년(숙종 44) 훈도(정9품), 1720년(숙종 46)에 교수(종6품)가 된다. 『구일집』의 잡록에 1713년(숙종 39) 유수석(劉壽錫)과 함께 청의 하국주와 산학을 논한 것이 나타난다. 역상고성(曆象考成)』(1721),『수리정온(數理精薀)』(1723)을 포함하는 『율력연원(律曆淵源)』(1722)을 출판하는데, 하국주는 교산(校算)을 맡은 사람이다.
회사(會士, 종9품)인 홍정하가 하국주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의 산학이 매우 뛰어났음을 뜻한다. 대담에서 홍정하는『구일집』에서 논한 천원술을 이용한 방정식의 구성과 증승개방법을 사용한 해법으로 하국주가 제시한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천원술과 산대를 모르는 하국주와 삼각법을 포함하는 서양수학을 모르는 홍정하는 거의 수학적으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하국주의 동생 하국종과 매각성은 『율력연원』의 대표 편찬자로 일하고, 고측(考測)으로 일한 하제도는 하국주와 함께 대담에 참여한 것이 잡록에 나온다. 하제도와 하국주가 조선의 천원술을 매각성에게 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정하의 『구일집』은 이상혁과 남병길이 연구한 산학계몽주해(算學啓蒙註解)』(1662)에도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