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좌윤, 대사헌,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수이(壽爾). 홍영(洪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참의 홍주국(洪柱國)이고, 아버지는 홍만적(洪萬迪)이며, 어머니는 이경억(李慶億)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0년(영조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34년 지평에 처음 부임하였다. 그 뒤 정언·사서·수찬을 지내다가 1738년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의 아버지인 박사정(朴師正)을 강화유수로 임명하려 하자 서차(序次)를 뛰어넘어 가자(加資)에 오점을 남기는 조치라고 논핵하다가 외임으로 출보되어 경성판관(鏡城判官)과 북평사(北評事)로 나갔다.
1740년 돌아와 필선·교리를 지냈다. 1742년 11월 동지 겸 사은사의 서정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집의·보덕·필선을 역임하고 1746년 동래부사(東萊府使)를 지냈다. 1748년 대사간을 지냈다.
1751년 경흥부사(慶興府使)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돌아 와 이듬해 다시 대사간에 등용되었으나 1763년 죄를 받아 오랫동안 벼슬을 지내지 못하다가 1769년 동지의금부사에 특별히 발탁되고 이어 좌윤·대사헌, 예조참판을 지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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