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옥(大玉), 호는 천일재(天一齋). 예조참판 홍영(洪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주준(洪柱俊)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홍만최(洪萬最)이며, 어머니는 신기한(申紀漢)의 딸이다.
1684년(숙종 10) 사마시를 거쳐 1688년 3월 반궁시(泮宮試)에서 수석합격을 하고, 16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0년 설서가 되고, 1691년 정언이 되어 그해 이동근(李東根)과 함께 장계를 올려 김석주(金錫胄)의 죄상을 밝혀 처벌할 것을 청하고, 다시 남용익(南龍翼)의 교문(敎文)을 문제삼아 따지라는 계(啓)를 올리기도 하였다.
1693년 홍문록(弘文錄)에 오르고, 지평이 되어 책무태만으로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94년 부교리가 되고 같은 해 헌납 윤성교(尹誠敎)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며, 1695년 유배에서 풀려났다.
1721년(경종 1) 다시 수찬에 임명되었으나 소론인 서종하(徐宗廈)로부터 갑술옥사 때의 일로 탄핵을 받아 파직을 당하였다. 1725년(영조 1) 노론의 집권으로 사예·사복시정·판교·강릉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