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1810년(순조 10) 황해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이조참판에 올랐다. 1817년 대사간을 잠시 지낸 다음 이조참판·병조참판·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19년 동지사 겸 사은사의 정사(正使)로 청나라를 다녀 오고, 이어 형조와 공조의 판서를 거쳐 한성부판윤·우부빈객(右副賓客)을 지냈다. 1821년 대사헌을 지내고, 이듬해 이조판서를 역임한 뒤 외보(外補)로 광주유수(廣州留守)로 나갔다가 곧 형조판서가 되었다.
광주유수(廣州留守)로 재직시 선릉(宣陵)의 정자각(丁字閣) 개수(改修)를 감독하여 가의대부(嘉義大夫)에서 숭정대부(崇政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1825년 한성부판윤, 좌부빈객·좌빈객·수원부유수를 지냈다. 시호는 익정(翼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