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청원(淸源). 근창(謹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순(純)이고, 아버지는 선공감주부 승석(承錫)이며, 상주목사 낙(洛)이 형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이어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 보임하다가 임란이 발생하자 고을을 버리고 도망갔다가 다시 백의종군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예조정랑으로 복직되었고, 지평을 거쳐 공조정랑이 되어서는 명에서 파견된 송경략(宋經略)의 문례관(門禮官)으로 의주에 다녀 왔다. 다시 지평을 거쳐 1599년 서산군수로 재직하던 중 사사로이 잡물(雜物)을 정원으로 직송하였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추고당하였다.
1601년 개성부경력과 서흥부사를 거쳐 담양부사가 되었으나 부임한 지 5일 만에 행실이 비루하고 일처리에 물의가 있다는 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그 뒤 성균관전적으로 복직되었고, 『선조실록』 작성시 사재감정으로서 편수관이 되었지만 실록찬수관으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간원의 탄핵을 받아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