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대사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이조좌랑·홍문관교리, 의정부의 검상·사인, 예빈시정·홍문관부응교·사부시정·홍문관의 전한·직제학 등을 두루 거쳤다. 1565년 사헌부집의로서 이량(李樑)의 당이 몰락할 때 고맹영(高孟英)과 이언충(李彦忠)을 구호해 가벼운 처벌을 받게 한 일로 조야의 원성을 받았다.
이후 동부승지와 우부승지를 거쳐, 좌부승지 때 당대의 권신인 윤원형(尹元衡)의 첩 정난정(鄭蘭貞)을 잡아 추국(推鞫)하기를 청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형조참의를 거쳐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그 뒤 예조참의와 좌부승지를 거쳐, 다시 대사간이 되어 언관의 수장으로서 “임금이 신하의 말을 모두 포용하면 상하의 정이 서로 통하게 될 것이다.” 하여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간원의 잘못에 대한 홍문관의 지적과 연이은 사헌부의 탄핵으로 체직(遞職: 관직이 교체됨)되었다가 바로 형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이후 우부승지·대사간·부제학을 거쳐 다시 대사간을 역임하다가 44세로 졸하였다. 당시 사론에서 자품이 온아하고 마음 씀씀이가 너그러우며 일을 잘 처리한다는 평을 받았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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