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제10대 연산군의 후궁.
생애 및 활동사항
나이 30이 되었어도 용모가 뛰어나 연산군에 발탁되어 총애를 받았고, 내명부(內命婦) 종4품 관작인 숙원(淑媛)에 피봉, 무수한 금·은·주옥·노비·전택(田宅) 등을 하사받았다. 연산군을 어린애 다루듯 하였고 모든 상형(賞刑: 상과 벌)이 그녀의 입에서 행하여졌다.
1503년(연산군 9) 종3품인 숙용(淑容)에 봉하여지고 이듬해에는 그녀의 집 주변 민가를 모두 철거, 선공감(繕工監)으로 하여금 새로이 단장시켰다. 1506년 오빠 장복수(張福壽)와 자녀들을 모두 양인 신분으로 올리고, 관선(官船)을 이용하여 평안도 미곡 7,000석을 무역하였다.
왕이 비록 격노하였으나 그녀를 보면 즉시 희색을 띨 정도로, 교태스럽고 요사스러워 연산군 실정의 한 요인을 만들었다. 1506년 중종반정 때 참형(斬刑)에 처하여지고 적몰가산(籍沒家産: 전재산을 기록대장에서 삭제하고 몰수함.)되었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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