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제10대 연산군의 후궁.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중종반정
  • 사망 연도1506년(중종 1)
  • 성별여성
  • 주요 관직숙용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인혁 (제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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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제10대 연산군의 후궁.

생애 및 활동사항

본래 제안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로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에게 출가하여 자식 하나를 두었고, 뒤에는 가무(歌舞)를 익혀 이름을 떨쳤다.

나이 30이 되었어도 용모가 뛰어나 연산군에 발탁되어 총애를 받았고, 내명부(內命婦) 종4품 관작인 숙원(淑媛)에 피봉, 무수한 금·은·주옥·노비·전택(田宅) 등을 하사받았다. 연산군을 어린애 다루듯 하였고 모든 상형(賞刑: 상과 벌)이 그녀의 입에서 행하여졌다.

1503년(연산군 9) 종3품인 숙용(淑容)에 봉하여지고 이듬해에는 그녀의 집 주변 민가를 모두 철거, 선공감(繕工監)으로 하여금 새로이 단장시켰다. 1506년 오빠 장복수(張福壽)와 자녀들을 모두 양인 신분으로 올리고, 관선(官船)을 이용하여 평안도 미곡 7,000석을 무역하였다.

왕이 비록 격노하였으나 그녀를 보면 즉시 희색을 띨 정도로, 교태스럽고 요사스러워 연산군 실정의 한 요인을 만들었다. 1506년 중종반정 때 참형(斬刑)에 처하여지고 적몰가산(籍沒家産: 전재산을 기록대장에서 삭제하고 몰수함.)되었다.

참고문헌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중종실록(中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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