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춘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첨지중추부사, 나주목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화중(和仲)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자|전경|박사|나주목사|강원도관찰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심승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첨지중추부사, 나주목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화중(和仲). 홍경손(洪敬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헌납 홍윤덕(洪潤德)이고, 아버지는 예문관대교 홍계정(洪係貞)이며, 어머니는 김기수(金期壽)의 딸이다. 형이 이조참의 홍춘경(洪春卿)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4년(중종 29)의 생원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였고, 153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의 정자·전경·저작·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었지만 동궁의 요속에는 적합치 않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체직되었다.

그 뒤 1543년 종부시첨정으로서 춘추관의 관직을 겸임하였지만 다시 춘추관의 관원으로는 부적격하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춘추관의 관직을 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 『중종실록』을 편찬할 때 장악원첨정으로서 편수관에 참여하였다.

군적낭청에서 1553년(명종 8) 성균관의 추천으로 사유(師儒)가 되었다. 이후 봉상시정을 거쳐 1567년 첨지중추부사로서 북경에 황후책봉을 축하하기 위해 다녀 왔으며, 나주목사와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학문적인 능력은 있었지만 김안로(金安老)에게 아첨하였다 하여 당시 사류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