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길 ()

동현학칙
동현학칙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방언』, 『일용집요』, 『사례요의』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이길(耳吉)
하려(下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50년(영조 26)
사망 연도
1827년(순조 27)
본관
창원(昌原)
출생지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방언』, 『일용집요』, 『사례요의』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이길(耳吉), 호는 하려(下廬). 아버지는 황이곤(黃以坤)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白川趙氏)로 조경채(趙景采)의 딸이다. 안정복(安鼎福)을 사사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형 황덕일(黃德壹)과 함께 경전(經傳)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제자백가서를 두루 읽어 15, 16세 때 벌써 학예(學藝)로 이름이 높아 친구가 많았다. 이때 어머니로부터 “명리(名利)를 좋아하는 사람과 교유해서는 안된다.”라는 훈계를 받았는데, 그 뒤로는 함부로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스승으로부터 위기(爲己)의 학문을 배워 일상생활의 윤리로부터 성명(性命)·이기(理氣)의 근원에 이르기까지 깊이 연구하여 그 요령을 얻었다. 따라서, 황덕길의 학문은 해박하고도 요점을 얻었으며, 간략하고도 충실하여 조화의 근원을 꿰뚫고 사물의 이치를 밝혔다. 거처를 ‘하려(下廬)’라 이름하고 세로(世路)에 인연을 끊은 채 학문 탐구에만 몰두하였다.

저서로 『방언(放言)』·『일용집요(日用輯要)』·『동현학칙(東賢學則)』·『도학원류찬언(道學源流纂言)』과 『속찬언(續纂言)』·『삼자실기(三子實記)』·『사례요의(四禮要儀)』·『가례익(家禮翼)』·『동유예설(東儒禮說)』·『경훈사교록(經訓四敎錄)』·『사서집록(四書輯錄)』·『수사연원록(洙泗淵源錄)』·『도동연원록(道東淵源錄)』·『증보성현군보록(增補聖賢群輔錄)』·『척견록(摭見錄)』·『어류찬(語類纂)』·『초학편(初學編)』·『소대연편(昭代衍編)』·『고사상고(古史詳攷)』 등을 남겼는데, 모두가 천리(天理)를 밝히고 인심(人心)을 바로잡는 내용의 책으로, 옛 성현의 뜻을 계승하여 후세의 학문을 열어주었다.

참고문헌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하려문집(下廬文集)』
관련 미디어 (6)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