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신수(莘叟), 호는 공백당(拱白堂). 아버지는 황이곤(黃以坤)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白川趙氏)로 조경채(趙景采)의 딸이다.
어려서는 성품이 호걸스러워 역사서나 병서(兵書) 등을 즐겨 읽었고, 특히 제갈량(諸葛亮)을 사모하였다.
그러다가 20세가 넘어서야 『심경(心經)』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과거공부를 폐하고 안정복(安鼎福)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언행이 바르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어머니가 죽은 뒤로는 동생 황덕길(黃德吉)과 한집에서 살면서 학문을 강론하였다.
황덕일은 “경전을 말하면서 시무(時務)에 어두우면 부유(腐儒)이고, 사공(事功)만 일삼고 천리(天理)에 어두우면 속사(俗士)이다. 오직 천리의 바름에 합하고 시무의 요점을 얻어야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주희(朱熹)의 향약과 선현들의 법도를 따라 동약(洞約)을 만들어 마을 풍속을 바로잡았다. 당시 서학(西學)이 들어와 세상을 풍미하자 안정복의 뜻을 계승하여 『삼가략(三家略)』을 지어 이단을 배척하였다. 저서로는 『역학심전(易學心傳)』·『효경외전(孝經外傳)』·『사서일득록(四書一得錄)』·『춘추부의(春秋附義)』·『사례비요(四禮備要)』·『가례익(家禮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