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자반(自反). 황정(黃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윤현(黃允縣)이고, 아버지는 황균(黃均)이며, 어머니는 유의심(柳宜諶)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552년(명종 6)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병조좌랑을 시작으로 사간원정언·예조좌랑을 거쳐 1559년 다시 병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사헌부지평·홍문관수찬·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지평이 되었다. 청직을 두루 역임하였지만 당시 권신(權臣) 이량(李樑)과 결탁하여 청직을 얻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병조좌랑과 홍문관수찬 등을 거쳐, 1563년(명종 18)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이량이 양사의 탄핵을 받아 귀양가게 되면서 파직과 동시에 문외출송(門外黜送: 4대문 밖으로 축출됨. 즉, 한양성 밖으로 쫓겨남.)되었다가 1584년(선조 17) 영의정 박순(朴淳)의 계사를 통해 다시 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