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자경(子褧). 황석(黃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곤재(黃坤載)이고, 아버지는 황부(黃裒)이며, 어머니는 최진해(崔振海)의 딸이다.
1712년(숙종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14년 정언에 초임되었다. 이듬해 필선(弼善)을 거쳐 장령을 역임하였다. 장령으로 재직시 논의가 준열하다 하여 ‘오색대간(五色臺諫)’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권상하(權尙夏)가 사리에 어긋나는 말을 앞장서서 하여 시비를 어지럽히는데도 불구하고 버려둔 채 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722년(경종 2) 호조참의로 재등용되어 그 뒤 승지를 역임하였으며, 전라감사를 지내고 돌아와 대사간이 되었다.
1724년 한성우윤(漢城右尹)과 강화유수(江華留守)를 지냈으나 이듬해 유배되었다가 1726년 풀려나 동지부사(冬至副使)에 임명되었으나 나이 70이 넘으면 사개(使介)에 차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나아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