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자우(子羽). 황입중(黃立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면(黃沔)이고, 아버지는 황진구(黃震耉)이며, 어머니는 김계(金棨)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99년 지평에 초임되었으며, 그 뒤 정언·필선·장령·문학·헌납을 역임하였다. 1702년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호남에 다녀와 문학과 헌납을 역임하였다.
이듬해에는 주청사(奏請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가 왕명을 받든 사신으로서 체통을 잃었다는 이유로 죄를 입었으나 다행히 책봉칙사(冊封勅使)가 도착하자 그 공로가 인정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듬해 승지를 거쳐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나갔다가 돌아와 우승지가 되었으며, 1712년 병조참지(兵曹參知)를 거쳐 광주부윤(廣州府尹)에 임명되었으나 나이가 너무 들어 곧 교체되고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717년 동지의금부사·도승지를 거쳐 경기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늙고 쇠약하여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곧 교체되었다. 1722년 도승지를 거쳐 한성좌윤을 지냈으며, 1725년 영조 때에 들어 와서도 승지, 호조참판·공조판서, 동지의금부사, 우참찬·좌참찬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