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양백(良伯). 동부승지(同副承旨) 황근중(黃謹中)의 오대손(五代孫)으로, 할아버지는 황응두(黃應斗)이고, 아버지는 황수태(黃壽泰)이며, 어머니는 이만전(李萬全)의 딸이다.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1751년(영조 27)에야 정언으로 등용되고, 이어 지평·장령을 지냈으나 1760년 입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763년 장령으로 재등용되고 이어 헌납을 지내다가 소를 잘못 올려 삼수(三水)로 귀양갔다가 1767년 풀려났다.
1769년 필선으로 다시 등용되고, 집의·부수찬·승지를 거쳐 의주부윤(義州府尹)에 나아갔으나 의주어사(義州御史)의 포흠(逋欠: 세금포탈과 관물의 사사로운 사용)에 대한 염찰(廉察)에 걸려 귀양갔다가 1773년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