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몽응(夢應). 황진구(黃藎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건(黃鍵)이고, 아버지는 한성판윤 황귀하(黃龜河)이며, 어머니는 최천서(崔天瑞)의 딸이다.
1744년(영조 20)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이듬해 정언으로 초임되었다. 그 뒤 지평·수찬·부교리·헌납·겸사서를 역임하였다. 1754년 사복시정(司僕寺正), 부교리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이어 승지가 되었으나 차대(差待)에 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767년 부총관(副摠管)에 특별히 제수되고 공조참판을 거쳐 1769년 대사헌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