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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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고대 문헌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과 규율을 연구하는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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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훈고학은 고대 문헌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과 규율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훈’은 자구나 언어가 가리키는 의의를 설명하는 것이고, ‘고’는 옛말을 가르치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고금의 다른 말을 소통시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공간과 시간의 제한 없이 언어로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훈고이며, 또는 그 방법을 논하고 의미 체계를 밝혀 언어 문자의 계통과 근원을 밝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어의학, 어음학, 어법학, 수사학, 문자학, 사전학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목차
정의
고대 문헌 언어를 해석하는 방법과 규율을 연구하는 학문.
내용

훈고학(訓誥學)은 언어, 특히 고대언어의 정밀한 의미를 알기 위해 필수적인 학문이다. ‘훈(訓)’은 자구나 언어가 가리키는 의의를 설명하는 것이고, ‘고(誥)’는 옛말을 가르치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고금의 다른 말을 소통시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곧 공간과 시간의 제한 없이 언어로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훈고이며, 또는 그 방법을 논하고 의미 체계를 밝혀 언어 문자의 계통과 근원을 밝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어의학, 어음학, 어법학, 수사학, 문자학, 사전학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로 인해 의미의 명확한 이해가 특별히 요청되었던 경전 해석에서 훈고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경전 본래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해석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한 · 당대와 청대의 유학은, 경전 의미의 도출을 중시한 송명대의 이학(理學) · 의리학적 경학과 대비하여 훈고학적 경학이라고도 불린다.

훈고학이 발달했던 한대 경학의 경우,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두고 그들에게 각각 일경(一經) 일박사(一博士)라고 하는 전문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하였다. 『시경』의 신배공(申培公) · 원고생(轅固生) · 한영(韓嬰) · 모형(毛亨), 『서경』의 구양생(歐陽生) · 하후승(夏侯勝) · 하후건(夏侯建), 『주역』의 시수(施讎) · 맹희(孟喜) · 양구하(梁丘賀) · 경방(京房) · 비직(費直), 『춘추』의 공양(公羊) · 곡량(穀梁) 등은 제각기 전문 주석에 힘써 많은 공적을 남겼다.

후한의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 14편은 『이아(爾雅)』와 함께 훈고학자들에게 소중한 보전(寶典)이었다. 마융(馬融)과 정현(鄭玄)에 이르러 한 사람이 여러 가지 경과 전을 함께 다루는 움직임으로 발전하고, 이에 제가(諸家)의 훈고가 비로소 정리, 집성을 보게 되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안사고(顔師古)가 태종의 명에 의해 오경의 탈오(脫誤)를 보정(補正)하고, 공영달(孔潁達)이 제유 공저로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지었는데 이것은 모두 전통적 훈고를 중심으로 하는 학문이었다.

송원명대의 의리학적 해석이 공소한 효과를 낳자 청대는 고증학을 발전시켜 새로운 방법의 고대어 주석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철저한 고증에 의해 경의(經義)를 밝히고 문자와 그 뜻을 분명하게 가려낼 것을 요구하는 훈고학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문자는 언어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먼저 언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문자를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보는 음운학파(音韻學派)가 나타났으며, 『설문』을 비롯하여 한대 이후의 학서(學書)가 모두 미흡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금석학파(金石學派)가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 전해지는 경서는 수없이 탈오, 착간(錯簡)되어 믿을 수 없는 점이 있다고 하여 교감파(校勘派)와 집일파(輯佚派)가 생겨나며 훈고학의 범주를 확장시켰다.

20세기 말 갑골문의 발견과 1970년대 초 다량의 죽간 발굴은 한때 훈고학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갑골문 연구 성과에 따르면, 허신 이후 갑골문을 직접 보지 못했던 문헌 문자학자[훈고학자]들의 한자 연구는 상당 부분 오류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훈고학이 학문으로서 연구 가치가 적다는 인식이 한동안 팽배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훈고학은 다시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었고, 관련 학회가 창립되는 등 중요한 학술 분야로 재부상하고 있다.

조선의 경우, 주자학이 성행하면서 경전의 훈고는 이미 주자가 완성해 두었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에 따라 학자들은 주자가 밝힌 의리를 잘 실천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했으며, 그 결과 중국에서의 훈고학 발전에 비해 성과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훈고학은 문자와 『소학』 학습에 일부 활용되었을 뿐, 본격적인 학문적 발전은 미흡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약용『오학론(五學論)』에서 경전의 자의(字義)를 정확히 밝히는 학문인 훈고학의 궁극적 목표가 도학(道學)과 명교(名敎)의 뜻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한대의 주해를 고증하여 훈고를 찾는 방식을 적극 수용하는 한편, 주희(朱熹)의 주석서를 바탕으로 의리를 탐구해 성명(性命)의 이치와 효제의 가르침을 밝히고, 예악과 형정(刑政)의 문장을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정약용은 원시 유학의 진면목을 회복하고자 하는 목표 아래 『상서고훈(尙書古訓)』, 『시경강의(詩經講義)』 등 경학 연구 저술에서 문자 훈고학적 방법론을 적극 활용했다.

또한 석천 신작(申綽)『시차고(詩次故)』, 『역차고(易次故)』, 『서차고(書次故)』 등 경학 연구에서 송대 주석가인 주희 등의 견해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주로 한 · 당대의 고주를 두루 모아 문자 훈고학적 방법을 적극 활용하는 연구 태도를 보였다. 이로써 그는 조선 경학에서 드물게 훈고학 연구 방법을 적극 실천한 학자가 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주대박, 『훈고학의 이해』(동과서, 1997)
高明, 『中國古文字學通論』(北京大學出版社, 1996)

논문

한연석, 「훈고학초탐」(동방한문학 48, 동방한문학회 2011)
양원석, 「조선후기 문자훈고학 연구」(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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