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본문 224면. 1924년 6월 조선도서주식회사(朝鮮圖書株式會社)에서 간행하였다. 작자의 첫 시집으로 박영희(朴英熙)의 서(序)와 작자의 자서(自序)가 있고 총 55편의 작품을 5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흑방비곡’편에 「밀실로 돌아가다」·「만가(挽歌)」 등 9편, ‘오뇌의 청춘’편에 「붉은 미친 여름이 오면은」·「오뇌의 청춘」 등 17편, ‘자화상’편에 「자화상」·「추한 자야 무엇을 웃느뇨」 등 13편, ‘푸른 문으로’편에 「자금(紫金)의 내 울음은」·「푸른 문으로」 등 6편, ‘정밀(靜謐)’편에 「정밀」·「애도아창(愛道雅唱)」 등 10편이 실려 있으며, 부록으로 시극 「죽음보다 압흐다」가 수록되어 있다.
시극 「죽음보다 압흐다」는 화가 방태한(方台翰)과 기생 김주(金珠)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일막극 형식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박영희가 서문에서 “피곤한 생(生)이란 폐허에서 미로(迷路)하는 사람들 가슴속에 감추인 것을 노래하였으며, 비통한 눈물을 흘리는 자를 애무하는 인도적 비곡(祕曲)을 노래하였다.”고 평하였듯이, 염세적이고 감상적인 탐미주의적 의식이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좌절과 패배, 허무와 감상이 지배하던 당대의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작가의 의식세계를 통하여 그대로 투영한 작품이다. 죄악과 고뇌와 누추(陋醜)한 현실과 대립하여 성결(聖潔)한 진리를 찾고자 하였던 작가는 미지의 세계로, 죽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나 밀실과 흑방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세계이며 관능적 탐닉의 세계인 폐쇄공간에서 작가는 ‘참’이라는 구제의 길을 찾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며 좌절을 노래한다.
미래의 가능성으로부터 단절로 인한 절망의식은 이른바 백조파(白潮派) 시인들을 감상적 자기탐닉이라는 부정적 감정에 안주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에 박종화는 자신의 고뇌가 지극히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관념적 추상성을 벗어나지 못하자 소설로 장르 전환을 꾀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 하였다.
이 시집에서 볼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출구를 찾지 못하는 들끓는 열정을 표하는 퇴폐적·허무적·감상적 방향성은 1920년대 전반의 우리 시의 주조적 흐름을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