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이무영(李無影)이 지은 단편소설.
내용
낙향한 수택은 자신의 농촌 설계가 무정견하고 로맨틱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낙향하여 처음 몇 달간은 농사를 지으며 소설도 쓴다는 일종의 허영과 자만으로 유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피땀 흘려가며 농사를 짓고 나서 추수를 해보니 자기 몫으로 남는 것은 벼 넉 섬 뿐이었다. 이것으로 다섯 식구가 반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 그만 낙담하고 만다.
도저히 생활 설계가 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자기 집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 김 영감은 고아로 자수성가한 근검의 화신이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30여 마지기의 논을 10년 사이에 다 날리고 맨주먹의 소작농이 되어 있었다. 김 영감은 그것이 신문명의 유입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문명은 사람의 기호를 바꾸어놓고 필요의 증대를 유도하였으며, 농민들은 과도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계문명이 농촌을 망쳤다는 것이 김 영감의 결론이었다. 일제의 식민지 시장정책에 의한 우리의 농촌 착취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농민들의 가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택은 야학당(자기도 과거에 가르쳤던)에 들렀다가 선생으로부터 하루 죽 한끼도 못 먹는 아이들이 파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울해진다. 김 영감의 땅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었다. 그는 지금은 남의 땅이 된 지난날의 자기 땅을 찾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는가 하면, 휴지가 되어버린 땅문서를 뒤적이기도 한다.
수택이 자신의 원고료와 퇴직금, 그리고 일부 세간을 판 돈을 합해서 그 땅을 도로 사겠다고 하니 김 영감은 뛸 듯이 기뻐한다. 하지만 이미 병든 몸이다. 자신의 약값 때문에 땅값이 축날 것을 염려한 김 영감은 “찾어-땅-.” 한마디를 남기고 양잿물을 마시고 자결한다. 김 영감에게 있어서 땅은 그의 전부였고, 그는 철저한 흙의 노예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농민들의 일반적 속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식민지 치하에서의 농민의 가난과 가난한 농민의 흙에 대한 집념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당시 농민들의 삶과 의식의 한 단면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 『신문학사조사(新文學思潮史)』(백철, 신구문화사, 1981)
- 「일제시대한국농민소설연구」(임영환,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76)
- 「한국농민소설연구」(신춘호, 고려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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