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당집 ()

유교
문헌
1771년,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중간한 시문집.
이칭
이칭
망우선생문집(忘憂先生文集)
문헌/고서
간행 시기
1771년
저자
곽재우(郭再祐)
편자
곽진남(郭鎭南)
권책수
5권 3책
권수제
망우선생문집(忘憂先生文集)
판본
목판본
표제
망우당집(忘憂堂集)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부산대학교 도서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망우당집』은 1771년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중간한 시문집이다. 그의 후손과 문인들이 시·서간·논설·상소문·유훈·지문류 등 다양한 글을 모아 편찬한 5권 3책의 목판본이다. 곽재우의 강호에서의 은일적 삶, 의병 활동의 정당성, 정치적 소신과 충절을 보여 주는 상소와 편지글, 일상 윤리와 후손 교육을 위한 유훈 등으로 구성되며, 후대에 거듭 증보 간행되었다.

정의
1771년,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중간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곽위(郭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곽지번(郭之藩),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이다. 화왕산성전투에서 활약하며 홍의장군이라 불리었다.

서지사항

5권 3책의 목판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부산대학교 도서관, 국민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망우당집(忘憂堂集)』의 초간본은 중간본 발문을 참고해 보면 곽재우 사후에 그의 아들과 사위 성이도(成以道) 및 내 · 외손들이 그의 시문을 모아 2권 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현전하는 초간본에 1629년(인조 7) 곽유(郭瀏)의 발문이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초간본은 곽재우 사후인 1622년(광해군 14)에서 1629년(인조 7)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초간본의 내용이 소략하고 편차가 정돈되지 못하여 내 · 외손들이 다시 중간(重刊)하였는데, 이때 연보를 외손 신시망(辛時望)이 대폭 증수하였다. 이후 증직(贈職) · 주1 등의 사실을 1771년(영조 47) 중간본을 발간하면서 한 차례 더 증보하였는데, 이때 곽재우의 6세손 곽진남(郭鎭南)이 원유(院儒), 후손들과 함께 현풍현감(玄風縣監) 김사혼(金思渾)의 발문을 받아 예연서원(禮淵書院)에서 개간(改刊)하였다.

구성과 내용

5권 3책으로 간행된 중간본의 목록을 살펴보면, 권수에 서(序) · 발 · 유묵 · 세계(世系) · 연보 · 목록이 있고, 권1에 시 27제, 서(書) 11편, 논 1편, 문(文) 2편, 권2에 소 1편, 권3에 장(狀) 2편, 유훈(遺訓) 2편, 부록, 권4에 부록, 권5에 부록, 사제문, 사액제문 등이 있다.

서(序)는 허목이 쓴 것으로 1689년 예원서원의 사액을 윤허받은 후 후손들이 중간에 수록한 것이다. 세계는 1세 곽자의(郭子儀)로부터 13세 곽재우와 이후 20세까지 수록되어 있다. 연보는 곽재우의 출생에서부터 사망 후 이듬해에 사당이 세워지기까지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구 연보가 소략하고 외손 신시망이 찬한 연보 역시 누락된 것이 있어 두 가지를 대조하여 보충하고‚ 증직 · 증시 · 서원봉안 등의 사실을 첨부한다는 설명이 있다.

는 총 27제 36수로, 「귀강정(歸江亭)」, 「영회(咏懷)」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강호에서 은일자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 많다. 서(書)는 곽재우가 김성일(金誠一) · 이원익(李元翼) · 김덕령(金德齡), 사위 신백희(申百熙)와 성이도 등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 초유사 김성일과 주고받은 편지가 3통이다. 김성일이 도순찰사(都巡察使) 김수(金睟)와 함께 있는 자리에 곽재우를 불렀으나 곽재우가 응하지 않았던 데 대한 자변(自辯), 김수를 참수해야 한다는 주장, 김성일이 곽재우가 도당(徒黨)을 이끌고 반란을 꾀한다고 오해하는 것에 대한 해명과 억울한 마음 등을 담고 있다.

에는 곽재우가 임진년에 의병을 일으키면서 임금에게 그 이유를 밝히는 상소 「자명소(自明疏)」와 모친상으로 벼슬에 나가지 못한다며 올린 상소 「사기복제(辭起復第) 1∼3소」, 반역죄에 연루된 영창대군을 보호하기 위하여 올린 「구영창대군소(救永昌大君疏)」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에는 경상좌병사로 부임한 곽재우가 도산성(島山城)의 수비를 청한 글 「청선도산성장(請繕島山城狀)」과 성주목사로 있던 곽재우가 산성 수축이 급무임을 진언한 글 「정도원수품축산성장(呈都元帥稟築山城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유훈에는 현손 곽원갑(郭元甲)이 유사(遺事) 가운데서 모은 글로 일상사에서 지켜야 할 일을 기록한 「거가잡훈(居家雜訓)」 등이 보인다.

부록은 권4와 권5에 수록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곽재우의 시장(諡狀) · 묘지명 · 신도비명 · 묘표 등 지문류와 제문 · 축문 · 고유문, 각종 문헌에서 발췌한 곽재우 관련 사적의 초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곽유의 발문은 1629년(인조 7) 성이도가 간행한 초간본의 소루함을 안타까워하여 증보하여 중간한다는 내용이고, 1771년(영조 47) 김사혼의 발문은 후손 곽진남(郭鎭南)이 영남에 부임하여 유고를 보여 주며 소루한 데가 많기 때문에 유작을 수집하고 조야 명신들의 문집에서 관계 사실을 초록하여 증보하고 권수에 연보를 붙여 3책으로 중간한다는 내용이다.

의의 및 평가

『망우당집』은 곽재우의 문학과 의리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당대 정치와 사회 제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파악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논문

박균섭, 「곽재우 장군에 대한 전쟁 서사와 인물 평가, 그리고 의병사의 재구성」(『인격교육』 18-1, 한국인격교육학회, 2024)
강문식, 「실록을 통해 본 곽재우(1552~1617)의 의병 활동」(『규장각』 3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8)
최석기, 「망우당 곽재우의 절의정신」(『남명학연구』 6,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1996)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죽은 대신이나 장수에게 임금이 시호(諡號)를 내려 주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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