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웨베르-고무라각서는 1896년 서울 주재 러시아공사 웨베르와 서울 주재 일본공사 고무라 사이에 조선의 각종 사안을 놓고 교환한 각서이다. 「Waeber-Komura Memorandum」, 「경성의정서」 혹은 「서울의정서」라고도 한다. 청일전쟁 이후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의 아관파천 등으로 일본과 러시아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체결되었다. 4개조로 구성되었는데 고종의 환궁과 조정 대신의 임명 문제, 부산-서울 사이의 전신선 보호, 양국 군대 주둔 등에 관한 내용이다. 이후 양국은 모스코바에서 다시 협상하여 「로바노프-야먀가타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정의
1896년 서울 주재 러시아공사 웨베르와 서울 주재 일본공사 고무라 사이에 조선의 각종 사안을 놓고 교환한 각서.
개설
역사적 배경
결국 청일전쟁의 종결과 함께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싸고 러·일의 갈등이 본격화 하게 되고, 그 결과 조선에서 나타난 현상이 ‘인아거일(引俄拒日)’ 및 명성황후시해,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난(아관파천) 등이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는 일단 조선의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일본은 타개하고자 하였지만, 일단 양국은 현상태에서 불가피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잠정적 타협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맨 처음 등장한 것이 서울에서 양국의 공사 사이에 체결된 「웨베르-고무라 각서」이다.
이 각서는 청일전쟁 이후 본격화되어 가던 러·일 양국의 갈등의 결과이자, 한반도를 무대로 표출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 군사, 외교적 타협의 하나이다. 조선 현지의 사태가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 등으로 비화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 일본, 그리고 유리한 고지를 한반도에서 점하게 된 러시아 사이에 한반도 내의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이해관계를 조정할 필요에 의해 양국이 서울 현지 자국 공사를 통하여 잠정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한 것이다.
경과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이민원,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국학자료원, 2002)
- 이광린, 『한국사강좌-근대편』(일조각, 1982)
- 최문형, 『열강의 동아시아정책』(일조각, 1979)
- 外務省外交史料館 日本外交史辭典編纂委員會 編, 『日本外交史辭典』(大藏省印刷局, 1979)
- Lensen, George Alexander, Balance of Intrigue-International Rivalry in Korea and Manchuria 1884∼1899, Vol.1, 2(Tallahassee: University of Florida,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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