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의 차원에서 시작된 개념으로서 관련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회전체적인 문제의식이 확대되고 있다. 개념의 실제적 적용은 복합적이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를 의미하는 개념이 특별법의 적용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개념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성폭력은 1980년대 사회 전체적으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만연하던 시기부터 가시화되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의 분위기 속에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 뒤이어 87년 전남 고흥에서 경찰에 의한 임신여성 성폭행 사건을 비롯하여 일련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가 개소하여 아내구타, 강간 등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다루면서 ‘성의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폭력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파악하면서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접근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노동운동, 민주화운동과 연관되지 않는 성폭력이 발생하면서 성폭력은 ‘여성의 성(sexuality)에 대한 폭력’으로 인식되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법 제정 논의가 시작되었고, 여성운동 진영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내용을 포함하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성적인 함의를 갖는 폭력’을 주된 처벌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1994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성폭력은 80년대 이전까지 (부녀자)의 ‘정조에 관한 죄’로 여성 개인보다 남편이나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사안으로 접근되었다. 그러나 여성운동 진영에서 이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정조’에 국한된 강간사안보다 범위를 확대하여 인신매매, 아내구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동시에 혼인관계 내의 부녀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점도 강조되어 전체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폭력으로 해석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성적인(sexual) 폭력이 젠더, 즉 여성에 대해서만 행해지는 폭력으로 국한되면, 군대나 감옥에서 발생하는 남성들 간의 성폭력, 남성 유아에 대한 어른의 성폭력 등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노정되었다. 따라서 성폭력이 여성에게만 국한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닌 측면을 포함하기 위해 남녀 간에 발생하는 성적인 폭력의 내용 뿐 아니라 동성 간에 발생하는 내용까지 포함하여, 성추행, 강간, 강간미수, 조직문화의 위계 구조 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어린이 성추행 등이 개념에 포함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1994년 법률제정 이후, 현실 개념이 법률 적용에서 구체화되지 못하는 한계가 노정되어 지속적인 개정안을 통해 구체적 내용과 처벌 조항이 변화되고 있다.
성폭력을 단순한 폭력의 문제에 국한하거나 여성에 대한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인간 존재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한 예로 여성의 피해자화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기 위해 ‘생존자’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층위의 경험들을 성찰하여 여성을 비롯한 개인들이 성적 주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임을 사회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성폭력 개념은 이를 통해 사회에서 간과된 중요한 측면이 성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념의 성립이 여성운동의 노력과 더불어 법률제정으로 연결되면서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법적 조처가 취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법이나 사회의 인식이 아직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개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계속되는 법개정을 통해 남성중심문화, 성차별화된 구조가 성폭력을 양산하는 기반이 되고 있음을 알리면서 사회의 인식 개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