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우룡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을 모집하며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 민주독립당 선전부장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0년 12월 30일
  • 출생지함경남도 신흥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0년
  • 정태헌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을 모집하며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 민주독립당 선전부장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생애 / 활동사항

엄우룡은 1918년 고향에서 영춘학교(永春學校) 졸업 후 1919년 2월 간도(間島)로 가 신흥무관학교에 다니다가 그해 8월 군자금과 학생 모집을 위해 입국했다. 1920년 7월 의열단원 김상옥(金相玉)의 상해행 여비 조달을 위해 유득신(劉得信)과 경기도평의원 박완상(朴完相)에게 2천원 출금을 요구하는 등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그가 속한 국민당이 한국독립당에 흡수된 후 1947년 6월 초 안재홍 등과 반탁노선을 반대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미소공위를 지지해야 한다면서 한독당을 탈당했다. 이후 한독당 탈당파가 결성한 신한국민당은 1947년 9월 홍명희의 주도에 힘입어 민주통일당, 민중동맹, 신진당, 건민회 등 4당과 통합, 민주독립당을 결성했고 엄우룡은 선전부장을 맡았다. 1947년 11월 엄우룡은 유엔총회의 한반도문제 결의안 지지 기자회견을 하면서 1948년 1월 민주독립당을 탈당했는데 한국전쟁 때 납북(또는 월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참고문헌

  • - 『남북협상 :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서중석, 한울, 2000)

  • - 『한국정당통합운동사』(김현우, 을유문화사, 2000)

  • - 『벽초 홍명희 연구』(강영주, 창비, 2000)

  • - 『대한민국(大韓民國) 독립유공자(獨立有功者) 공훈록(功勳錄)』제9권(국가보훈처 편, 199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