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촛불)

촛불집회
촛불집회
사회구조
개념
일몰 후 주로 옥외에서 촛불을 들고 진행하는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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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몰 후 주로 옥외에서 촛불을 들고 진행하는 집회.
개설

촛불집회는 항의나 추모를 목적으로 하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주요방식이다. 특히 한국에서 촛불집회는 ‘촛불문화제’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야간시위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시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가 집단시위나 저항행동의 주요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연원 및 변천

촛불집회는 1960년대 말 미국의 반전운동 과정에서 나타났으며 한국에서는 1992년 온라인 서비스의 유료화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저항적 시위에 활용된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사망한 두 여중생의 추모집회에 이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시위를 거치며 야간시위의 주요방식이 되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서 최대 규모의 촛불시위가 전개되었고, 2011년에는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촛불집회가 있었다.

내용

시위의 규모나 기간, 시위의 강렬성에 있어서 2002년과 2008년의 촛불집회는 의미 있는 사례들이다. 이 집회들은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기술경제와 공론장, 시민문화의 변화를 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기존 시민운동의 조직 동원방식을 넘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한 광범한 동원구조는 거대한 시민행동을 낳았고, 집회 현장은 모바일과 노트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촛불집회가 갖는 비폭력평화시위의 상징성과 함께 특히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참여시민들이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축제적 시위방식이 자발적 시민참여의 수준을 놀라울 정도로 높이기도 했다.

현황

2002년 촛불집회는 미군장갑차사건 이후 가해 미군이 무죄평결을 받으면서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주도했다. 11월 26일 촛불집회에는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이 참여했고, 각종 시국회의와 종교계의 추모의식이 잇달았다. 2008년 촛불집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내용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의 모임에서 출발하여 100일 이상 계속되었고, 약 2개월간은 연일 수백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했으며 7월 이후에는 주말집회가 지속되었다. 집회가 계속되면서 내용이 교육, 대운하, 공기업민영화, 정권퇴진 등의 이슈로 확대되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새로운 시위방식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특정 이슈로 모인 촛불집회는 촛불운동, 촛불민주주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체가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광장의 문화가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 내고 시민의 정치적 힘을 행사하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제도적 대안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참고문헌

『촛불, 그 65일의 기록』(경향닷컴 촛불팀, 경향신문사, 2008)
「한국 민주주의와 촛불시위」(조대엽,『노동과 사회』7․8월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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