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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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기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기
공예
유물
국가유산
경상북도 구미시 도리사(桃李寺)의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이란 음각 명문이 새겨진 조선시대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의 하단부 사리공(舍利孔)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금동제 사리함.
이칭
이칭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함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桃李寺 世尊舍利塔 金銅舍利器)
분류
유물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1982년 12월 07일 지정)
소재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89, 직지사 (운수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도리사(桃李寺)의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이란 음각 명문이 새겨진 조선시대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의 하단부 사리공(舍利孔)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금동제 사리함.
개설

198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출토된 이후부터 1999년까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위탁되어 보관되어 있다가 현재는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石鐘形) 부도(浮屠)의 모습을 한 세존사리탑은 1743년 윤4월에 건립된 것으로, 『호은집(好隱集)』의 「도리사 석종기(桃李寺石鐘記)」에 의하면 원래 석적사(石積寺) 터에 있던 옛 탑에서 발견된 사리와 금함(金函)을 이 탑에 다시 봉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헌에 기록된 금함(金函)의 내용과 달리 현재의 사리기는 청동에 도금을 한 금동제임을 알 수 있다. 금동 사리함은 부도 밑에 마련된 너비 15cm, 깊이 30cm 정도의 육각형 사리공 안에서 조선시대 백자 편들과 함께 발견되었으며 사리함의 내부에는 천으로 싼 사리 1과가 한지에 쌓여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통일신라 사리기와 달리 사리함 내부에는 별도의 중첩 사리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1743년에 사리탑을 건립하고 사리함과 같이 넣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발견된 사리는 새로 건립된 세존사리탑에 옮겨져 안치되었다.

내용

사리함은 높이 17.0cm, 아래면 길이 5.6∼5.8㎝인 육각형의 탑신부(塔身部)와 뚜껑의 기능을 가진 옥개부(屋蓋部) 두 부분으로 따로 주조되었으며, 탑신부 하단에는 안상이 뚫린 기단이 있다. 전체적으로 도금이 탈락된 곳과 탑신의 구멍이 일부 보이지만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으로서 탑신의 내부와 기단 안쪽, 바닥에는 도금 되어 있지 않다. 주조된 두께는 약 2∼4㎜정도의 매우 정교하게 주조된 점이 파악된다. 특히 탑신부의 여섯 면에는 각각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사천왕(四天王)이 섬세한 모조(毛彫)기법(털같이 가는 선으로 새기는 기법)과 축조(蹴彫)기법(금속판에 끌로 점선무늬를 만들어서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제석천으로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제석천은 군의(裙衣)와 천의(天衣)를 걸치고 세 번 몸을 튼 삼곡(三曲)자세로 서있으며 오른손에 금강저를 든 모습이다. 제석천의 부드러운 묘사와 달리 힘있게 표현된 범천은 군의와 갑의(甲衣)를 걸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범천과 제석천 모두 발 아래로 각각 연화좌가 표현되었다. 범천 다음에는 오른손에 탑을 든 북방다문천(北方多聞天)이 서 있고 다음의 천왕들은 각각 경전, 삼지창, 보검을 들고 있으나, 각각의 도상(圖像)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들 사천왕은 모두 갑옷을 입고 두광(頭光)이 표현되어 있으며, 제석 범천과 달리 암좌(巖座)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육각형의 옥개부는 중앙의 연화좌 위에 꼭지가 마련되어 있으나 현재는 꼭지 윗부분은 남아 있지 않다. 옥개부의 각 모서리에는 각각 귀꽃이 솟아 있으며, 귀꽃에는 금동제 원형 고리가 하나씩 매달려 있다. 특히 귀꽃 아래 처마 부분과 낙수면 중앙에 원형의 고리가 남아있어 영락(瓔珞)을 매달았던 것을 알 수 있어 화려한 장식성을 갖춘 수작으로 평가된다.

의의와 평가

통일신라시대 후기부터 등장한 승탑을 모방한 사리용기들은 대체로 팔각형이 많은 데 비해 이 금동제 사리함은 이와 달리 육각형인 점이 독특하다. 이 금동제 사리함에 보이는 기단의 안상형 투공이나 옥개 끝에 높이 솟은 귀꽃 등의 건축적 요소는 동시대의 석조 승탑을 비롯한 건축 양식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 사리함은 통일신라시대 대부분의 당형사리기의 형태가 팔각(八角)인 것에 비해 육각(六角)의 특징적인 외형에 고식의 안상표현, 몸체의 천부상과 사천왕의 선각 기법, 귀꽃의 표현에서 9세기 불교공예와 조각 및 건축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직지사 성보박물관 도록』(직지사성보박물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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