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석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영산회(靈山會) 괘불도(掛佛圖).
개설
내용
좌우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화염보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긴 연꽃가지를 들고 본존처럼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있다. 얼굴은 본존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사각형에 가까운 편인데 턱 부분에 살이 많아 다소 비대해 보인다. 화려하게 장엄된 상내의(上內衣)와 상의(裳衣) 위에 발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군의(裱衣)를 걸치고 두 다리를 약간 벌리고 서있는 보살의 뒤로는 훤히 비치는 검은 망사형의 두광이 둘러져 있다. 보살 위에 작은 크기로 묘사된 4명의 나한은 채운을 배경으로 석가모니를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가섭존자와 사리불(이상 향우측), 오른쪽에는 아난존자와 목건련존자(이상 향좌측)로 추정되며, 회색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친 제자들과 달리 가섭존자는 잔잔한 화문이 시문된 짙은 갈색의 가사를 걸쳤다. 제자들은 가슴과 손등에는 일일이 털을 그려넣어 실존했던 인간으로서의 제자들의 모습을 표현하려한 듯 섬세한 필치와 음영법의 구사 등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채색은 붉은색과 녹색의 주조색 외에 청색과 황색, 백색, 금색 등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특히 석가모니의 대의 가장자리와 대의 전면, 보살의 천의 등에 설채된 능숙한 금니의 문양은 화려하면서도 이 괘불도의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필선은 강하면서도 곧은 철선묘(鐵線描)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괘불도는 주상전하 및 왕비전하, 세자저하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1702년에 제작되어 경상우도(慶尙右道) 서진산(栖鎭山) 선석사(禪石寺)에 봉안되었다. 90여 명의 시주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그림을 그린 화원은 탁휘(卓輝), 법해(法海), 설잠(雪岑), 성징(性澄) 등 네 명이다. 성징은 선석사 괘불도보다 1년 앞서 제작된 상주 남장사 감로탱(1701년)에 탁휘 등 7명의 화원과 함께 참여했다. 1705년 용문사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는데, 용문사 괘불도는 4명의 제자가 2명으로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선석사 괘불도와 형식 및 양식적 특징, 심지어는 90여 명의 시주자에 이르기까지 거의 동일하여, 선석사 괘불도의 초본(草本)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수화사 탁휘는 1650년 갑사 괘불의 화원으로 참여하였고, 상주 남장사 감로탱(1701년)에 성징과 함께 참여하였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17세기, 인ㆍ숙종기의 괘불화 연구」(김창균, 『강좌 미술사』31,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8)
- 「마곡사 괘불-도상 및 조성배경을 중심으로」(김정희,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 』2권, 사회평론, 2006)
- 「조선 후기 괘불탱의 연구」(정명희, 『미술사학연구』242ㆍ243, 한국미술사학회, 2004)
-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김미경, 『예천 용문사 괘불탱』, 통도사성보박물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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