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삼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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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오십삼불도
순천 선암사 오십삼불도
회화
개념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근거를 두고 53명의 부처를 묘사한 불화.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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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근거를 두고 53명의 부처를 묘사한 불화. 불화.
내용

대승불교의 다불사상에 근간을 두고 그려진 오십삼불도(五十三佛圖)는 말 그대로 53명의 부처를 묘사한 불화이다. 오십삼불에 대한 신앙은 5세기 강량야사(畺良耶舍)에 의해 한역된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오십삼불의 이름을 부르면 시방의 여러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 사중오역죄(四重五逆罪)가 없어진다는 데서 널리 신봉되었다. 또한 이 경전에서는 오십삼불을 지극히 공경하고 예배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천불(千佛)로 차례차례 성불(成佛)할 것이라고 하여 오십삼불이 삼천불(三千佛)의 원인이 되는 부처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진평왕(眞平王)대 안흥사(安興寺)에 오십삼불을 벽화로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7세기 초부터는 오십삼불이 불화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금강산 장안사 정전(正殿)과 선실(禪室)에 각각 오십삼불이 봉안되었다는 이곡(李穀)의 『가정집(稼亭集)』 「금강산장안사중흥비(金剛山長安寺中興碑)」의 기록이나, 유점사 능인보전에 봉안되었던 오십삼불상(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은 금강산을 중심으로 오십삼불신앙이 유행하였음을 보여준다.

현존하는 오십삼불도는 탱화형식 2점과 벽화형식 2점으로 모두 조선 후기에 그려진 것이다. 선암사 오십삼불도(1702년)와 송광사 오십삼불도(1725년)는 총 7폭으로 구성된 탱화형식이며, 오십삼불을 그린 벽화로는 관룡사 약사전 창방 4면에 돌아가며 그려진 것과 봉황사 포벽에 그려진 것이 있다.

선암사의 오십삼불도(1702년)는 7불을 주불(主佛)로 하는 주불도(主佛圖) 1폭과 6폭에 53불을 나누어 그렸으며, 송광사의 경우 주불도 1폭에는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三身佛)과 사방불(四方佛)로 구성된 7불을 배치했으며, 제34불을 제외한 52불에 과거비바시불(過去毘波尸佛)과 당래미륵존불(當來彌勒尊佛)을 덧붙여 6폭에 54불을 나누어 그려 구성하였다. 특히 송광사 오십삼불도(1725년)를 비롯하여 관룡사, 봉황사 오십삼불도에는 각 부처 옆에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기록된 오십삼불의 명호(名號)가 적혀있어 53불의 신앙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찬란한 불교 미술의 세계 불화』(김정희, 돌베개, 2009)
「1725년 義謙畫派의 송광사 불조전 〈五十三佛圖〉」(정명희, 『미술자료』, 2019)
「송광사 불조전 53佛과 華嚴·懺悔 사상」(김세영, 용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조선후기 다불회도 연구」(고진영, 『불교미술사학』6, 통도사성보박물관․불교미술사학회, 2008)
「유점사 53불 연구」(김민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금강산 유점사 53불」(곽동석, 『아름다운 금강산』, 국립중앙박물관, 1999)
「선암사의 불교회화」(김승희, 『미술사학지』Ⅱ,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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